"내편 아니면 네편" 편가르기 사회..통합·조정기능 사라지고 집단민원 쏟아져 보수-진보 이념대립 세대갈등으로 확산..정치권, 상생외치며 상극·노조는 '年鬪'
입력 2004.05.18 16:36:06수정
2004.05.18 16:36:06
[재출항! 한국號 어디로 ] 분열공화국
"내편 아니면 네편" 편가르기 사회..통합·조정기능 사라지고 집단민원 쏟아져보수-진보 이념대립 세대갈등으로 확산..정치권, 상생외치며 상극·노조는 '年鬪'
대화없이 투쟁… 믿음보다 불신…
국민의식조사 보고서
재출항! 한국號 어디로1-1
"폭풍우속 개혁號" 좌표를 찾아라
“정치학을 전공하는 여대생 안미리씨(21)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자 친구들과 함께 책임자 응징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안씨의 할아버지(72)는 탄핵 찬성 집회에 참석해 ‘한국의 좌익세력이 무너졌다‘며 환호했다”.
노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 된 다음날인 지난 3월 13일자 워싱턴포스트지 의 보도다. 이 신문은 “탄핵에 따른 이념 갈등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을 갈라 놓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탄핵을 둘러싼 갈등은 가정과 일터 등 사회 곳곳으로 급속히 번져나갔고 4ㆍ15총선으로 연결되면서 더욱 증폭됐다. 보수와 진보간 이념 대립이 세대갈등으로 확대재생산 되면서 새로운 갈등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보수ㆍ진보 진영 모두 ‘친북 대 반북, 친미 대 반미’ 등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혀 접근하고 있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분오열(四分五裂)된 단일민족 =
한국 사회 곳곳에는 ▦이념 ▦세대 ▦지역 ▦빈부 갈등 등 폭발 직전의 뇌관들이 묻혀있다. 지난 2002년 서울 월드컵에서 둥근 공 하나로 한반도 전체가 함께 열광하고 뭉쳤던 일은 이미 오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거나 삶의 수준에 차이가 나면 모두가 적(敵)이다. 대화는 일단 뒷전이다. 싸워서 이겨야 할 극복 대상인 것이다. 반면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이웃이나 집단의 이익은 법을 어겨서라도 지켜내고 쟁취해야 한다. .
너도 나도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접수된 20인 이상 다수인민원 건수는 전년보다 70건 늘어난 1만5,653건에 달했다. 건설교통분야가 9,504건으로 60.7%를 차지했고 ▦환경공해(1,313건, 8.4%) ▦노동임금(1,074건, 6.9%) ▦농업산림(1,074건, 6.9%) 순이었다.
특히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노동관련 민원이 급증해 노동임금분야가 농업 산림쪽과 자리바꿈을 했다. 직종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집단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노조는 물론 공무원까지 처우개선과 권리주장에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지난 4월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리기 않는 이유로 ▦정치적인 불확실성 ▦만성적인 노사분규 등 두 가지를 들었다.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경기회복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며 노사분규 가능성이 아직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한국의 노사문제는 해마다 똑 같은 상황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춘투(春鬪), 하투(夏鬪)를 넘어 이제 ‘연투’(年鬪)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세계 꼴찌 수준으로 전락한 우리나라 노사관계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노사 상호간의 불신이다.
하지만 일부 노동관계 전문가들은 “이번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함에 따라 과거 투쟁지향의 노사문화가 대화로 바꾸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상생(相生)인가, 살생(殺生)인가 =
정치권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생’ 의 정치를 외친다. 하지만 잠시뿐 뒤돌아서면 ‘살생’ 의 정치가 우선이다. 17대 국회도 벌써부터 ‘분배가 먼저냐, 성장이 우선이냐’를 두고 논란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생의 정치가 과연 가능할 지 의문을 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어느 사회나 이해 관계를 두고 대립이 생기지만 이것을 통합하고 뗍ㅗ求?게 정치과정”이라며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정치의 부재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지역갈등 역시 해묵은 숙제다. 지난 17대 총선에서도 지역감정으로 불리는 지역 이기주의가 여전히 맹위를 떨쳤다. 전라ㆍ충청 등 동쪽은 열린우리당이 휩쓸고 경상도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투표결과는 동서갈등, 지역갈등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했다.
더 문제인 것은 자기 지역은 인물을 보고 투표했는데 다른 쪽에서 지역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투표행태를 보였다고 서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인 셈이다.
여기에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은 최대의 사회불안 요인으로 꼽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펴낸 ‘2003년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약 5%에 불과한 소수가 전 국토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고, 상위 1.6%의 가구가 전국민 소비의 25%를 차지한다. 빈부간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 남녀 5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갈등을 묻는 질문에 절반에 육박하는 47.5%가 빈부갈등을 지목했다. 최근 1~2년 사이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계층이 많아짐에 따라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정부와 서울 강남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재산세 인상안을 두고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빈부갈등 심화라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5-18 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