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품격을 높여라] 청소년도 욕·독설 찌든지 오래… 이러다간 막말 공화국된다

<1> 사회의 품격
비속어·은어 오염된 10대들 늦어도 2040년께 주류 세대로
경제력 뒷받침되더라도 외국인 차별·약자 괴롭힘 확산 땐 글로벌 리더십 인정 못 받아
다층적 연구조사로 대책 세우고 사회 지도층도 솔선수범해야

이자스민(왼쪽 두번째)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100% 국민행복실천본부 첫 회의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자스민씨에 대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는 등 사회품격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대근기자


"유럽 경제가 주춤하는 사이 우리가 매년 꾸준히 3~4%대 성장만 이어가도 빠르면 7~8년 안에 대한민국이 주요8개국(G8)의 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말 한 고위 경제관료가 기자에게 던진 이야기다. 다소 장밋빛 시각일 수 있지만 그의 관측대로 순항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오는 2020년을 전후로 명실공히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오르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제강국이 되면 자연스레 세계적 지도국가의 대접을 받게 될까. 외교전문가들은 단연코 "노(NO)"라고 말한다. 선진국다운 품격을 갖추지 못하면 경제력이 뒷받침되더라도 글로벌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일본이 대표적인 반면교사 대상이다. 경제력으로는 지구촌 선두를 다투는 강국이지만 아직 국제사회에서 존경 받는 지도국가로 평가 받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지도층의 막말식 종군위안부 비하 발언, 외국인 이민자를 차별하는 사회적 분위기, 약자를 괴롭히는 청소년들의 '이지메' 문화가 일본의 국가 이미지를 얼룩지게 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를 강 건너 불 구경처럼 다룰 상황이 아니다. 지난 4ㆍ11 국회의원 총선거를 전후로 한층 불거진 우리 사회의 막말 증후군, 외국인 차별 의식, 약자 괴롭힘 현상은 우리 사회 역시 일본 못지않게 병 들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 중에서도 도드라진 현상은 막말꾼 추종 현상이다. 노인ㆍ여성 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김용민씨(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후보)가 비록 낙선하기는 했어도 지역구에서 44%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한 것은 충격이었다. 이는 중랑구에서 민주당의 정당득표율(비례대표 기준)인 41.12%를 넘어선 수치다. 우리 사회에서 막말꾼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막말 아이콘' '욕쟁이 리더'로 급부상할 수 있음이 실증된 셈이다.

문제는 인구ㆍ문화구조상 막말 아이콘이 우리 사회의 전면에 부각될 위험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유권자가 될 청소년이 욕설과 독설에 찌들어 있기 때문. 장경희 한양대 교수 등 7명의 연구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용역을 받아 2010년 11월 말 완료한 '청소년 언어 사용 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청소년들이 평균 20어절당 1번씩 비속어나 은어ㆍ유행어를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어절은 띄어쓰기의 단위인데 한국말이 보통 한 문장당 4~5어절로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청소년들이 평균 네다섯 문장마다 한번 꼴로 막말 등을 쓰는 셈이다. 심할 때는 거의 매문장(4~5어절) 비속어ㆍ은어 등을 쓰는 사례도 있다고 연구팀은 보고했다.

막말에 오염된 현재의 청소년 세대는 늦어도 2040년께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의 얼굴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19대 총선의 초선 당선자 평균 연령이 47세인 점을 감안할 때 현재 중ㆍ고등학교 재학생들이 늦어도 30년 후부터 국회 입성을 본격화하기 때문이다.

이 연령대는 경제활동 분야에서도 허리에 해당한다. 이들 세대가 막말 오염을 정화하지 못하고 정치ㆍ경제의 중추를 이룰 경우 자칫 '막말 공화국'으로 비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막말 증후군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도 연관이 있다. 최근 경기도 수원시에서 벌어진 조선족의 여성 살해 사건을 빌미로 외국인에 대한 공격성 막말이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쏟아지는 것은 대표적 사례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광범위하고 다층적인 연구조사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학계에서 이뤄진 연구는 대체로 학교나 인터넷 공간을 대상으로 단편적인 언어생활에 그치고 있다. 사회인 현황 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울러 막말 증후군이 매년 누그러지는지 악화되는지도 비교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언어ㆍ발달학습, 인지ㆍ행동과학, 정치ㆍ경제ㆍ사회학 분야에서 방대하고 종합적인 공동연구를 실시해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이를 기초로 관계 당국이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당장 청소년 교육 단계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장 교수 연구팀은 조사 대상 학생 중 36%가 수업시간에 비속어나 은어 등을 사용해도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수업 이외의 시간에는 비율이 67%선까지 높아졌다. 이는 교사가 학생의 막말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막말 증후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의 사회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치 지도자들의 탈법ㆍ편법 행위가 사회적 불만을 초래해 막말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이 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010년 2월 확보한 '국격 제고 관련 국민 인식 여론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격 수준이 낮은 원인으로 '부정부패 사회지도층의 비리가 근절되지 않아서'라고 꼽은 응답(1순위 응답률 34.3%, 1ㆍ2순위 응답률 57.5%)이 가장 많았다.

국격 향상을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소통ㆍ대화 노력이 부족한 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응답(응답률 37.4%)이 가장 많았다. 정치권이 청년 실업, 자영업자 몰락, 은퇴 세대의 빈곤화와 같은 세대별 아픔을 제대로 공감해주고 함께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누적된 불만이 앞으로도 막말 증후군으로 표출될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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