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산마루 은빛억새물결

창녕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 없어 아쉬움드넓은 고원에 융단처럼 펼쳐진 억새들이 미풍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산마루 호젓한 오솔길엔 억새 춤에 화답하듯 개나리가 샛노랗다. 햇살 따사로운 2월의 오후 남녘 산의 능선은 봄의 온기로 충만하다. 경남 창녕군 화왕산(756m)은 '불의 산'이다. 옛날 화산활동이 활발했다는 이 산은 화왕(火旺)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불꽃이 일렁인다. 봄에는 진달래가, 가을에는 흐드러진 억새가 들불 번지듯 온 산을 수놓는 곳이 화왕산이다. 또한 2~3년마다 정월 대보름에 산정상 억새평원에서 펼쳐지는 억새태우기 행사는 국내 최대규모의 불놀이로 이름이 높다. 억새태우기 행사는 올해는 없고, 내년 대보름에 열릴 예정이다. 임진왜란 때 산마루 목마산성에서 진을 치고 왜병을 용맹스럽게 물리친 의병장 곽재우의 투혼은 '애국의 불꽃'이었다. 그렇다면 드라마 '허준''상도'의 촬영지로 이어지는 능선의 오솔길을 오붓이 걷는 연인들의 모습은 '사랑의 불꽃'이 아닐까. 산행은 창녕여중학교 옆길로 들어서서 자하골을 거쳐 환장고개를 넘는 길을 선택했다. 화왕산 정상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이다.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1시간쯤 오르니 '환장할 만큼' 오르기 힘들다는 환장고개다. 가파르기도 가파르지만 웬 계단은 그리도 많은지. 걷다가 쉬기를 자발없이 거듭해도 가슴이 뛴다. 그러나 고생 끝에 낙은 더 큰 법. 산마루에 오르니 드넓은 평원이 장관이다. 억새가 은빛으로 물결 치는 가을 절정기에는 못미치지만 고원의 광활함은 몽골초원을 연상케 할 만큼 웅대함을 지니고 있었다. 때마침 건듯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춤사위가 봄을 기다리는 여행객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화왕산 꼭대기 평원에는 목마산성 성곽, 창녕 조(曺)씨의 시조의 설화가 서려있는 삼지(三池) 등이 있다. 목마산성은 신라 진흥황 때 축조된 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성곽은 조선시대 때 쌓은 것이다. 의병장 곽재우가 왜병을 물리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산의 최정상인 756m고지는 배바위. 두 개로 갈라진 바위가 마치 거대한 함선 두 척이 대양을 가르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위에 오르니 목마산성 성곽, 삼지의 자취, 드넓은 억새 밭이 한 눈에 들어온다. 목마산성 동문으로 빠져 나오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른 두 키 폭의 호젓한 오솔길. 길가에 개나리 꽃이 "봄이 왔다" 말해준다. 오솔길을 따라 1km쯤 걷다보면 너와집, 움막 등 10여채 들어선 드라마 '허준' 촬영 세트장이 나온다. 이 곳에선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상도'의 1~4회분도 찍었다. 세트장 마당에서 "한 장 부탁한다"며 사진기를 넘겨주는 연인들의 웃음이 정겹다. 화산의 흔적이 남아있고, 자연풍광이 빼어난 산.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역사가 숨쉬고, 현대적 영상 촬영지로 각광받는 곳. 화왕산 여행은 풍요롭다. <여행메모> ◇등산로 ▦창녕여중~도성암~환장고개~화왕산 정상~환장고개~도성암~창녕여중(3시간) ▦창녕여중~도성암~환장고개~화왕산 정상~진달래 능선~관룡산 정상~관룡사~옥천리(4시간) ▦옥천리~관룡사~관룡산 정상~진달래 능선~화왕산 정상~목마산성~창녕여중(4시간) ◇대중교통= 서울남부시외버스터미널(02-521-8550)에서 창녕행 버스(하루 5회운행) 1만7,500원. 시내버스 이용 남창교에서 하차, 도보로 자하골 매표까지 10분 정도 소요. ◇손수운전= 구마고속도로 창녕IC~창녕읍 오리정~창녕농협~창녕여자중고등학교~자하골. 자하골 주차장에 100여대 주차 가능. ◇주변 볼거리= 진흥왕순수비(창녕비), 창녕조씨득성비, 화왕성곽, 관룡사약사전(보물46호), 관룡사대웅전(보물 212호), 창녕고분 ◇문의= 창녕군청 관광진흥과 (055)530-2241~2, 자하골 매표소 (055)530-8475. 창녕= 글ㆍ사진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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