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 '미다스손' 엔젤 벤처중흥 이끈다] <중> 엔젤의 진화 '스마트 엔젤'

노하우 축적한 벤처1세대, 전문분야 콕 찍어 떡잎부터 키운다
네오위즈 공동창업자 장병규… 이니시스 만든 권도균 등
비즈니스 모델 결정서부터 개발·회계·인사까지 멘토링
"수익보다 투자 관점서 접근"



지난 2008년 엔씨소프트에 근무하다 창업의 꿈을 안고 벤처기업 플라이팬을 세운 정지웅 대표. 야심차게 선보인 수공예품 온라인쇼핑몰과 블로거 공동구매 지원 서비스인 '토스토'에서 쓴맛을 본 뒤 슬럼프에 빠졌다.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등 10명의 엔젤은 그러나 그의 능력을 꿰뚫고 있었다. 정 대표의 세 번째 도전인 명품 소셜커머스 '클럽베닛' 서비스에 선뜻 5억원을 투자했다.

현재 클럽베닛은 올해 회원 수 100만명, 매출 300억원을 예상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정 대표는 "노 대표와 이덕준 전 G마켓 부사장과 같은 엔젤들이 멘토로서 자금뿐 아니라 재무관리와 경영 노하우를 직접 전수해준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10여년 전 벤처붐 초창기에 우후죽순 생겼던 엔젤에 비해 혁명적으로 진화한 '스마트 엔젤'이 한국 벤처 생태계를 혁신시키고 있다. 2000년 전후 너도나도 대박을 노리고 투기처 찾기에 열을 올렸던 '묻지마 투자'가 사라진 빈 자리에 벤처경영을 체득하고 엔젤투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뉴엔젤들이 맹활약을 하고 있는 것.

최근 엔젤투자 규모는 10년 새 무려 94%가 줄었다. 하지만 스마트 엔젤의 출현으로 투자의 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과거 '돈 놓고 돈 먹기' 식 저급한 투자가 아니라 초기 기업을 탄탄히 키워 과실을 나누는 실리콘밸리식 정통파 엔젤들이 한국 벤처 중흥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벤처1세대'가 주인공=현재 국내에서 대표적인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창업열기가 뜨겁던 1990년대 말 정보기술(IT) 업계를 주름잡던 '벤처 1세대'라는 것이다. 초기기업 전문 투자회사인 본엔젤스 벤처파트너스의 장병규 대표는 1997년 탄생한 네오위즈의 공동창업자로 유명하다. 벤처기업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 역시 같은 시기 이니텍을, 이듬해 이니시스를 만들었다.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업체 패스트트랙아시아의 노정석 대표는 2008년 구글에 인수된 테터앤컴퍼니를 포함, 1997년부터 현재까지 IT 기업 4곳을 창업했다. 2007년부터 창업가와 투자자들 사이의 네트워크 모임인 고벤처포럼을 운영 중인 고영하 회장은 과거 IPTV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이후 하나TV 회장을 맡으며 벤처업계와 인연을 맺은 베테랑이다.

이들 업계 선배가 엔젤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은 바로 멘토링이다. 과거 성공한 벤처경영자로서 후배들이 창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미 극복해본 만큼 가장 빠른 해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벤처 묘목' 체계적 육성=스마트 엔젤들은 가능성 높은 예비 창업자를 발굴해 실제 사업화 단계까지 지원해준다. 이에 더해 우수 IT 개발자를 직접 키운다.

대표적인 사례가 틱톡. 본엔젤스의 '매드클럽'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개발자 선발 프로그램을 운영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틱톡의 산파역할을 했다. 틱톡은 1년 만인 현재 1,40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프라이머의 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기업당 2,000만~5,000만원을 투자해 현재 11개 벤처팀을 육성 중이다. 권 대표는 "초기 기업에 중요한 것은 돈보다는 '경영 멘토링'"이라며 "6개월 동안 사업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새로 만들어주는 등 공동창업자 입장에서 경영과 관련된 모든 부분을 서포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출범한 패스트트랙아시아의 기업 육성 프로그램 역시 이와 닮은 꼴이다. 서숙연 패스스트랙아시아 매니저는 "투자 대상 기업 대표와의 내부 토론을 통해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개발과 디자인, 회계, 인사 분야의 전문 인력을 지원해 기업이 자생력을 갖추도록 지원한다"고 말했다.

◇아는 것에만 투자=이들 스마트엔젤의 투자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바로 '자신이 직접 경험해본 분야에만 투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성공적인 자금회수(Exit)를 달성한 투자사례들은 모두 자신이 전문성을 갖고 있는 IT 분야에서 이뤄졌다. 강석흔 본엔젤스 이사는 "우리의 투자 모토는 '스마트머니'"라며 "돈뿐이 아니라 같이 조언하고 키워가려면 우리가 잘 하는 곳에 투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단기적인 수익 달성에 목매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권 대표는 "엔젤투자는 단순한 '하이 리스크(high risk), 하이 리턴(high return)'이 아니라 좋은 창업자들의 성공을 위한 '투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수가 모인 엔젤클럽을 통한 '분산 투자'도 특징이다. 고 회장은 "리스크 헤징을 위한 소액 분산투자가 고벤처엔젤클럽의 투자 원칙"이라며 "기업당 1,000만~2,000만원 규모로 나눠 되도록 많은 기업이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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