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금융시장 혼란의 불똥이 구소련권 국가로 튀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요동치는 가운데 벨라루스·카자흐스탄 등 대러 경제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의 외환시장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벨라루스 중앙은행은 전날 기준금리를 50%로 한꺼번에 두 배 이상 올리고 30%의 외환매입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장외 외환거래를 잠정 중단시키는 한편 수출업체들의 외환 의무매도 비중을 기존 30%에서 50%로 높이는 등 일종의 '자본제한'에 돌입했다.
벨라루스 중앙은행은 이 같은 조치가 최근 자국 시장에서의 외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달러 대비 15%가량 떨어진 벨라루스 루블화 가치는 이날 5.5% 급락해 지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라루스는 카자흐스탄과 함께 러시아가 주도하는 구소련 관세동맹에 가입한 나라로 대러 경제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위기의 불길이 자국 시장으로 옮겨붙기 시작하자 벨라루스는 당분간 러시아 루블화를 무역거래 통화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우리가 러시아의 뒤를 따라 추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루블화 대신 달러나 유로화로 거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키르기스스탄도 이날 민간 환전소 폐쇄 방침을 내놓았다. 자국 통화인 '솜'화 가치가 17일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진 데 따른 조치다. 이 밖에도 아르메니아 '드람'화 가치가 지난달 중순 이후 17%가량 하락하는 등 구소련권 국가들의 통화가 최근 러시아 루블화 불안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권의 경제제재 및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올 들어 50% 가까이 폭락했다. 지난주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6.5%포인트 인상하고 외환보유액을 추가 투입하는 등 환율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정책들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면서 19일 루블화 가치는 16일 기록한 사상 최저점 대비 35%가량 급등했다. 그러나 현재의 저유가가 계속된다면 루블화의 추가 약세와 그에 따른 러시아 주변국들의 피해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금융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등 구소련 국가들이 결국 자국 통화 보호를 위해 일종의 자본통제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본국 송금이 국가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몰도바·아르메니아 등은 루블화 통화 불안이 계속되면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FT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