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대기업의 비상생 마인드

“세계적인 글로벌 전자기업인 A사와 B사 같은 기업이 협력업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구미 국가산업단지에서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하는 C사 D사장의 푸념이다. 그동안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대기업과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의 사이가 여전히 갑과 을의 관계로 묶여 있고 을이 갑의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한탄스럽다는 반응이었다. D사장은 “납품단가 인하요구는 경기침체로 인한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면서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야기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 나서려는 것을 대기업이 저지하는 것은 부당한 행위”라고 토로했다. D사장은 협력업체로서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해온 A사의 보이지 않는 감시(?) 때문에 근심이 크다. 즉 C사는 최근 A사의 경쟁업체인 인근 단지의 B사에 신제품을 개발, 납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가 A사가 ‘그렇게 하면 곧바로 거래를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탓에 할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그러나 D사장을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B사의 태도. B사가 “제품의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경쟁사의 협력업체로부터는 일절 납품을 받을 수 없다’는 회사 내부방침 때문에 거래의사가 없다”는 답변을 보낸 것. D사장은 “기존 거래처의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신규 판매처 개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도 난감하지만 경쟁업체의 하청업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거래할 수 없다는 대기업의 경영 마인드가 더욱 허탈하게 만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특히 “이런 현상은 대기업간 치열한 경쟁사슬로 중간에 끼인 중소기업만 죽어가게 하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로 인해 C사가 A사에 더욱 종속되는 관계로 고착화돼 자생력 없는 기업으로 전락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말이 좋아 우수 협력업체이지 현실은 납품업체에도 못 미치는 ‘조공업체’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탄식이다. 대기업의 협력업체로 살아가야 하는 많은 중소기업들. 대기업들이 아무리 훌륭한 공적을 쌓아도 이같이 터무니없는 경영 마인드를 바꾸지 않는 한 많은 중소기업인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공적을 그들이 가로채 가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고, 이런 환경 속에서 진정한 상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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