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분기 개인차입 27조 사상최대예금·주식투자 줄어 개인자금부족 '악순환'
개인들이 주택구입을 위해 경쟁적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차입을 확대함에 따라 3ㆍ4분기 개인부문의 자금차입규모 및 자금부족규모가 각각 27조원과 5조2,000억원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보통 개인은 저축을 통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 정상이나 오히려 자금을 끌어다쓰면서 정상적인 자금순환을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가계부채가 안정적 경제성장을 해치지 않도록 합리적인 가계대출 연착륙에 주력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3일 '올 3ㆍ4분기 자금순환동향'에 따르면 개인부문이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차입한 자금규모는 27조원으로 2분기(25조5,140억원)보다 5.8% 늘어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 개인부문 차입은 늘리면서 저축은 축소
개인들은 이처럼 차입을 확대한 반면 예금이나 주식 등 유가증권에는 21조7,57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2분기(24조830억원)보다 10%나 감소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개인부문의 자금부족규모는 5조2,430억원으로 전분기(1조4,320억원)에 이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인부분이 2분기 연속 자금부족현상을 나타낸 것은 지난 65년 한은이 이런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후 처음이다.
통상 개인부문의 경우 예금 등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가 차입보다 많아 잉여자금을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개인부문이 올들어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를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려 나가자 2분기 연속 자금부족 현상을 빚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개인부문의 자금부족은 집값상승을 예상하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개인이 차입을 억제하고 저축을 통해 기업 등 생산적 부문에 자금을 공급하려면 '집값 안정'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 기업 자금수요는 계속 줄어
개인부문과는 달리 기업부문은 설비투자 부진영향으로 3분기중 18조9,29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는데 그쳤다.
이는 2분기(19조2,810억원)보다 3,500억원 감소한 것이다. 반면 유가증권 등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증가로 자금운용규모는 14조4,070억원으로 2분기(12조6140억원)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결국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외면하는 대신 여유자금을 금융상품으로만 운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자금부족규모도 4조5,000억원으로 전분기(6조7,000억원)에 비해 2조2,000억원이나 줄었다. 기업의 자금부족규모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금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뜻이다.
조성종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자금흐름이 정상화되려면 기업들이 합리화 투자 등 설비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한편 가계대출 수요를 가급적 억제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9월말 현재 개인, 기업, 정부 등 비금융부문의 부채는 가계빚증가로 1,190조원으로 6월말보다 3.3% 늘었고, 명목 국민총소득(GNI)에 대한 부채비율도 2.08배로 전분기말(2.05배)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 가계대출 연착륙이 과제
최근들어 정부가 강도높은 가계대출 억제책을 시행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도 한 풀 꺾이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이달들어 10일까지 가계대출 증가규모는 4,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 3ㆍ4분기까지 매월 가계대출 증가규모가 5~6조원에 달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크게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급격한 가계대출 감소가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강도높은 가계대출 억제로 대출금리 부담이 높아지자 연체율도 계속 올라가고 신용불량자도 양산되고 있다. 이미 11월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는 모두 257만명을 웃돌아 사상 최다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은행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한 중산층들이 헐값에 다시 집을 내다파는 상황도 생겨 은행 등 금융회사의 부실, 나아가 경제불안이 가속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이제 마치 사냥을 하듯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보다는 보다 점진적인 수단을 통해 가계대출 연착륙에 주력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