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필리핀 쌀 관세화 유예 부결

한국도 개방압력 커질 듯… 9월까지 관세화 여부 통보해야

쌀시장 개방을 막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와 협상을 벌여온 필리핀 정부의 노력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올해 말 관세화 유예 조치가 만료되는 우리나라 역시 상당한 수준의 시장 개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9일(현지시간)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 이사회에서 필리핀 정부가 요구한 '웨이버(Waiver·일시적 의무면제)'가 부결됐다고 밝혔다. 웨이버는 쌀 관세화 유예를 지속하기 위해 예외적인 상황에서 일정 기간 WTO 협정상 의무를 면제하는 조항이다. 필리핀은 지난 2012년 6월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돼 시장을 개방해야 했지만 WTO에 웨이버 요청을 한 뒤 협상을 벌여왔다. 필리핀은 현재 35만톤인 쌀 의무수입물량(MMA)을 80만5,000톤으로 2배 이상 늘리고 모든 희망국가에 쿼터(CSQ)를 할당하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국·캐나다·호주·태국 등이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뜻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의 웨이버 요청이 부결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우리나라의 셈법 역시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쌀 관세화를 받아들여 시장을 개방하거나 필리핀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웨이버 요청을 제시하는 두 가지 방안을 두고 저울질을 해왔다. 하지만 필리핀이 '상당한 대가'를 제시하고도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해 웨이버 요청 카드는 사실상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된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우리나라의 의무 수입물량이 40만9,000톤으로 연간 쌀 소비량의 9%에 달한다"며 "이를 확 늘리면서까지 관세화를 유예하는 게 올바른 판단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말 웨이버 종료를 앞두고 있어 6월 말까지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해 9월 WTO에 통보해야 한다. 농민단체들은 관세화를 통한 쌀 수입 개방이 농업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며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쌀 시장 개방에 나설 경우 식량 자급률이 급격히 낮아져 '식량 주권'을 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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