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헌논의 조속 마무리를

이 시점에서 개헌논의가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개헌이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우선 개헌저지선을 확보한 한나라당이 반대하므로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국민여론 또한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에는 회의적임을 보여줬다. 이 같은 여론이 가까운 시일 내에 바뀔 가능성 역시 매우 낮아 보인다. 성사가 불가능한 일을 가지고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그러므로 개헌논의는 조속히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8일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과 대선 예비주자들의 다음 임기 중 개헌 약속을 전제로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제안 역시 효과는 의문시된다. 무엇보다 야당과 대선주자들이 동의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한나라당 쪽의 일차적 반응은 무조건적인 개헌 발의 철회이다. 야당은 대통령의 개헌 제안이 대선을 겨냥한 정략적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불신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어떤 형태든 개헌과 관련된 논란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에 예상됐던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 속에서 차기 개헌 논의에 당력을 소모할 이유가 있을까. 대선주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차기 주자들이 자신의 임기 중에 행할 정치적 행위에 대해 물러날 대통령에게 어떤 약속을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국민의 지지를 더 받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신의 공약으로 국민에게 제시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설혹 협의를 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가면 이야기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개헌하겠다는 약속만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구체적 내용까지 확정해야 하는지 등등. 가령 이날 정부가 발표한 개헌시안의 내용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헌이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일치에 대한 찬반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임기 일치를 위한 대통령 궐위시의 조항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의 시안에 의하면 대통령 궐위시 남은 임기가 1년 이상인 경우 국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하고 1년 미만이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시안에 따르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국무총리가 최장 1년 동안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국무총리의 권력행사기간이 너무 길다는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이 기간이 어차피 과도기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또 보궐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최소 1년여의 짧은 임기만을 수행할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1년여 임기의 대통령 선출을 위해 대선을 치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각 정당의 후보선출 과정을 포함한 대통령선거의 기간이나 비용을 고려한다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위한 비용이라 하더라도 역시 그렇다. 그런데 이 같은 세부적인 문제 제기가 거꾸로 근본적인 문제의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가령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일치가 반드시 바람직하고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또 앞서 지적한 보궐선거 규정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식 정부통령제의 도입이 제안될 수도 있다. 이렇듯 대통령의 차기 개헌 약속이라는 제안 역시 성사 여부가 매우 불투명하다. 결론적으로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이후에 대한 후임자의 약속을 전제로 헌법적 권한의 행사 여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개헌 논의를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택은 두 가지로 보인다. 즉 대통령의 소신과 권한에 따라 헌법적 절차를 신속히 진행함으로써 논란을 마무리하거나, 아니면 개헌안 발의를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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