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차기 지도자 후보로 꼽히던 정치인이 10년 전 거짓말이 들통나 사퇴를 발표했다. 법정에서 지난 2003년 속도위반으로 날아온 벌점을 아내에게 떠넘긴 혐의를 받고 있는 크리스 휸 자유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에너지 장관직에서 물러난 데 이어 이번에는 의원직까지 내놓은 것이다. 영국에서 공직자에게 필요한 도덕성을 어느 정도까지 요구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여당인 새누리당의 표결처리 강행 움직임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청문회 직후만 해도 자격미달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 입장이 바뀐 모양이다. 왜 바뀌었는지, 이전에 문제로 삼았던 부분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다. 본인에게 사퇴 의사가 없고 지명권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한번 힘으로 밀어붙여보자는 식인지 묻고 싶다.
이 후보자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것은 잘못이지만 관행이었고 나중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로 대신해버렸다. 돈을 몰래 가져갔어도 나중에 갖다 놓으면 된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관행을 따른 자신이 아니라 시스템을 탓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별 것 아니니 사퇴를 못하겠다는 식이다. 이 후보자와 영국 정치인, 두 사람이 저지른 잘못 중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는 자명하다. 그런데도 영국에서는 스스로 장관과 의원직을 버렸고 한국에서는 버티고 있다. 이 후보의 버터기는 국격에도 마이너스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이 후보자에 대해) 최후 결정을 하지 않는 것은 부작위에 의한 소극적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도 없이 국민을 분노하게 한 인물을 감싸고 도는 것도 모자라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권력의 더 큰 폭력이며 오만이다. 지금이라도 지명을 철회하거나 스스로 물러나 국민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게 마땅한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