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전가의 보도된 '공공성'

정책과 법규는 명확해야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해석에 일관성이 없어지면 적용받는 사람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 최근 서울시의 강남 재건축 단지 관련 보류 결정들이 재건축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1대1 재건축을 추진했던 삼성동 홍실아파트는 '임대 주택이 없다'는 이유로 서울시에서 '보류' 결정을 받았다. 서울시는 임대주택과 일반 분양을 늘려 높은 용적률을 적용받고자 했던 반포 한양아파트 재건축 안에 대해서도 '용적률 상향 허용 여부'에 대한 격론 끝에 '보류'했다. 개포 주공아파트 단지들은 서울시로부터 "부분임대 주택을 10% 이상 넣는 것이 좋겠다"는 등의 권고를 받고 계획을 다시 만들고 있다. 사실 이들 단지가 서울시에 올린 재건축 계획은 현행 법규에 어긋남이 없는 것들이다. 현행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재건축 단지에 임대주택을 포함시킬지 말지 여부는 주민들의 선택이다. 용적률 혜택을 안 받으면 그만이다. 재건축 단지 부분임대에 대해서도 이를 강제할 법규는 없다. '권고사항'일 뿐이다. 법규에 어긋남이 없지만 사업계획안이 번번이 보류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전문가와 공무원들로 구성된 시 도시계획위원회 때문이다. 위원회는 최근 '공공성'을 내세우며 '법규상 하자 없는' 재건축 계획에 줄줄이 퇴짜를 놓고 있다. 법에 따라 만들어진 계획이 도시계획위의 추상적인 공공성 판단에 따라 어떤 곳은 통과되고 어떤 곳은 보류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도시계획위원회가 전가의 보도를 움켜쥐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는 높아져만 간다. 이럴 바에는 부분임대 비율에 대한 새로운 규정을 만들고 임대주택 포함 여부, 용적률 상향 등에 대한 규정을 재정비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공공성의 개념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명확하게 하자는 뜻이다. 주택이 가진 공공재적 특성 탓에 여전히 시장에 대한 공공의 개입과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 같은 개입과 규제에도 명확한 근거와 일관된 기준은 필요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