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는 침체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 반면 중국, 인도 등 서구 세계가 오랜 세월 무시했던 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번영을 예고하고 있다.
책은 세계적인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가 '법치주의와 적'이라는 제목으로 영국 BBC 라디오에서 방송했던 '리스 강연'을 엮은 것이다. 당시 강연에서 퍼거슨 교수는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서양이 제도적 타락과 경제 붕괴를 거치면서 어떻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뤘다. 전작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을 통해 서양이 어떻게 동양을 추월해 500년간 세계를 지배하게 됐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저자가 이제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서양과 동양의 오늘을 살피는 것이다.
저자는 2007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는 이제부터 본격화할 '거대한 퇴보'의 전조일 뿐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4개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서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 낸다. 그것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 시민사회 등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제도와 함께 변형된 형태로 발전하면서 분배라는 명제에 사로 잡히고 만다. 하지만 시장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 하에서 민주주의는 시장을 왜곡하는 도구로 활용되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 정치와 경제 활동을 제도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법치주의는 거대 자본에 사로잡힌 로펌의 농간에 휘둘리면서 본래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4가지 블랙박스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공 부채는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를 희생시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규제는 그 기능이 마비돼 경제체제의 취약성만 높이는 지역이 됐다. 역동적 사회에서라면 변화의 주도자 역할을 할 변호사들이 정체 상태인 사회의 기생충이 됐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기업의 이해와 거대한 정부 사이의 무인 지대 같은 곳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적극 수용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퍼거슨의 지적은 곱씹어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1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