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중소사업자가 세무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세금납부제도를 간소화하겠다’는 취지의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가 있다. 복잡한 세무를 잊고 오로지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다니 언뜻 사업의 능률이 촉진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현행 세법은 모두 성악설을 전제로 만든 법인데 중소사업자만을 위해 성선설을 전제로 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세금을 피해보려는 이기심에 대응해 모든 국민에게 조세 부담을 공평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세법을 만들다 보니 지금과 같이 세법이 어렵고 복잡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중소사업자에게만 적용되는 헐렁한 세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기장의 투명성이 담보되는’ 전자장부로 기장하는 중소사업자에 대해서는 과세소득의 계산 방법과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간편납세방식에 따라 소득세를 계산해 신고ㆍ납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장부라는 것이 거래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사업에 전념해야 할 사업자가 새로이 전자장부의 기장 요령을 배워 직접 기장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귀찮아서라도 지금처럼 공인회계사나 세무사에게 아웃소싱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세무전문가를 위해 간편하게 해주는 결과가 돼 아무런 개선의 의미가 없게 된다.
간편납세제를 위해 법인세법과 소득세법 각 6개조문을 신설하고 구체적인 시행 방법은 정하지 않은 채 대통령령으로 14(소득세법의 경우 15) 부분이나 위임해놓았다. 그러니 아직 뚜렷한 윤곽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너무 많은 중요 사항을 시행령으로 위임한 것이 세법으로서의 흠결이라는 느낌이 드나 성선설에 기초해 입법부터 하고 보자면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중소사업자의 애로사항을 덜어주고 오로지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그러나 지금도 어렵고 복잡한 것은 모두 공인회계사나 세무사에게 아웃소싱해서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다. 아웃소싱 비용도 아주 저렴하다. 기장사무가 전산화되고 경쟁 또한 심하다 보니 파격적인 가격으로 세무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과거 몇 십년간 정부는 지하경제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왔다. 중소 규모의 사업자에게도 기장을 하도록 독려하고 음성 탈루소득을 적발해 회계의 투명성을 높여왔다. 매년 개선되고는 있지만 실제 소득의 노출 정도는 아직도 실망스러운 수준에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간편납세제도의 도입은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오던 일련의 조치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 매년 꾸준히 개선해오던 근거과세나 실질과세의 노력이 자칫 간편납세제의 도입으로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근로소득자의 경우 소득의 100%가 노출되는 데 비해 자영업자는 소득노출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납세자간 세부담의 공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간편납세제가 도입되면 자영업자의 세원 파악이 더욱 어려워지고 제도적으로 이를 고착화할 우려가 있다.
공인회계사나 세무사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간편납세제 도입에 따른 문제를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이 제도의 도입에 비판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도 마치 이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이 줄어들 것을 염두에 두고 반대한다는 의심의 시각을 갖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자기의 밥그릇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야 올바른 정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혹자는 필자가 우려하는 모든 요소를 다 고려해서 시행령을 만들 때에 반영하면 될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지하경제를 축소하고 공평과세ㆍ근거과세 등을 기초로 조세정의를 실현하려는 국가 조세정책 방향과 간편납세제 도입 취지는 서로 역방향이 되고 말 것이다. 성선설에 기초해 간편납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시작한 것이 포장만 그럴 듯할 뿐 결국에는 성악설에 기초한 불편납세제도가 되고 말 수도 있다.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철저한 연구 검토를 마칠 때까지 간편납세제 도입을 위한 세법개정은 보류돼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공평과세원칙을 저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오던 근거과세원칙을 훼손해서도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