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까지 있는 5월은 서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가정의 달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 살갑게 돌보지 못한 자녀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과 선생님을 챙기는 기회로 삼으라는 취지에서 마련된 달이다. 그러나 지출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니 가계부 적자 고민이 깊어지면서 본래 취지는 무색해지는 대신 5월을 '가계 보릿고개'로 인식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다 결혼의 계절 5월에는 상당수 부부들의 결혼기념일이 자리잡고 있고 친인척, 친구, 직장 동료들의 결혼식 소식으로 축의금 부담까지 더해진다.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서울경제와 함께 직장인 665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서 가정의 달 지출 비용에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냐는 질문에 그렇다('다소 그렇다' 43.6%, '매우 그렇다' 16.5%)는 답변이 절반이나 됐다. '보통이다'는 응답이 24.8%였으며 '별로 그렇지 않다'(9.8%)와 '전혀 그렇지 않다'(5.3%)는 10% 미만에 그쳤다. 기념일이 너무 많아 5월의 기념일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직장인 응답자도 4명 중 1명 꼴(24.1%)이나 됐다. 올 5월 지출 예상 비용 조사에서는 20만~30만원 미만이 25.4%로 가장 많았으며 30만~40만원 미만(22.1%), 50만~100만원 미만(18.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0만~20만원 미만(17.7%), 40만~50만원 미만(7.4%)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으며 일부는 100만원 이상(4.8%)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5월을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가정의 달'이기보다 돈 걱정이 앞서는 '가계 대출혈의 달'로 여기게 된 직장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가계부는 빨강색 올 3월 결혼한 새댁 전정희(33) 씨는 결혼 후 처음 맞는 5월을 앞두고 어버이날과 어린이날 선물로 뭘 해야 할지 계산기 두드리느라 바쁘다. 당분간 결혼 준비에 쓴 카드 값 갚기에도 빠듯한데 5월은 양가 부모님 선물에 유치원 다니는 시누이 조카들까지도 선물을 챙겨줘야 할 것 같다. 전씨는 "양가 부모님 1인당 10만원짜리 선물만 해도 40만원에 조카 2명에 5만원씩 50만원은 기본으로 들어간다"며 "맞벌이지만 결혼과 신혼여행 비용이 워낙 커서 긴축 재정에 돌입했는데 다가오는 5월이 부담스럽기만 하다"고 말했다. 5월에 시집 식구들 생일이 몰려있는 주부 최시연(32, 이하 가명) 씨는 5월 달력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버이날 양가 선물과 용돈은 기본이고 10일 시동생 생일, 23일 시아버지 생신을 또 따로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아버지 생신에는 20여명의 가족 외식 비용에 선물과 용돈까지 챙겨드리려니 경제적 부담이 크다. 최 씨는 "친정 어머니 생신도 5월인데 매년 5월마다 과도한 지출을 하는 탓에 친정 어머니께는 용돈 한 번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마케팅 전문업체에 다니는 우보희(36) 팀장도 올해부터 친정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고 있어서 용돈을 더 드려야 하는 부담이 늘어 걱정이다. 특히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매년 초파일에 절에 가시는데 가족들 숫자대로 다는 연등 비용을 올해는 보태드려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 씨는 "5월엔 평소보다 지출이 많을 것을 예상해 남편도 나도 술 약속이나 쇼핑 등 불필요한 지출은 될 수 있으면 미루는 편"이라고 밝혔다. 외국계 게임회사에 다니는 이형수(34) 씨는 올해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님 제주도 여행을 보내드리기 위해 돈을 모아왔다. 항상 5월 어버이날이 가까워져서 선물을 준비하다 보니 용돈 외에 의미 있는 선물을 한 적이 없었는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씨는 "팁이나 옵션이 따로 포함되지 않고 쇼핑센터 방문이 적은 상품, 일정이 많이 바쁘지 않고 관광위주로 짜인 좋은 상품으로 선택하니 150만원 정도 지출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씨처럼 어버이날 선물로 여행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면서 하나투어, 넥스투어 등 해외 여행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들의 5월 출발하는 상품의 예약률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호텔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호텔자바의 5월 예약률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김형렬 호텔자바 이사는 "올해의 경우 지난 해 글로벌 경제 위기와 환율 쇼크로 억눌렸던 해외 여행 수요가 5월 가정의 달 수요와 맞물리면서 크게 늘어나는 분위기이며 이런 추세가 여름 휴가 성수기 시즌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현성일(39) 과장은 매년 5월마다 예상치 못한 결혼 축의금 '고지서'가 날아와 마음 고생이 심하다. 현 과장이 결혼할 당시만 해도 3만원 정도가 적정(?)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3만원이면 '짠돌이'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라 5만~10만원을 봉투에 담는다. 거기에다 직장 상사의 자녀 결혼식엔 십만원 이상 축의금을 준비하는 것이 기본. 그는 "아내는 '3만원 받은 사람에게는 3만원만 하라'거나 '오지 않은 사람은 왜 챙겨야 하냐'며 무언의 압력을 주지만 인맥 관리에 애로가 많다"며 "매년 5월 축의금을 위해 비상금을 헐어쓰고 여름 휴가비로 채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외동딸을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직장 맘 성연수(38) 씨는 작년 5월만 생각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지난해 스승의 날을 맞아 성 씨는 떡집에 떡을 주문하고 한방 화장품 세트를 선물로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만난 같은 반 친구 엄마는 담임 선생님이 '촌지'를 더 좋아한다고 귀띔해준 것. 성 씨는 "이미 비용을 치른 떡과 화장품 외에 예상치 못한 현금까지 지출하게 돼 5월 가계부가 고스란히 마이너스가 됐던 기억이 뚜렷하다"며 "올해는 미리 준비해뒀다"고 말했다. 5월 가계 지출이 늘어나는 사실은 유통업 매출에서도 확인된다. 롯데백화점의 지난해 월별 매출 비중을 보면 설(8.8%)과 추석(9.8%), 창립행사(11월), 크리스마스 특수(10.1%) 다음으로 5월(8.7%)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도 지난해 거래액 중 5월이 차지하는 비중이 8.8%로, 월 평균 비중(8.3%)에 비해 높은 수치이며 연말 선물 수요가 몰리는 12월(9.2%)에 비해서도 낮지 않은 수치라고 옥션측은 설명했다. 미리 준비하면 행복한 가정의 달 매년 가계부 적자 걱정만 하면서 가정의 달을 맞을 순 없는 일이다. 일부에서는 연간 계획을 세워 지출이 예상되는 달에 미리 대비하는 똑똑한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IT업체에 근무하는 한수성(43) 부장은 5월이 되면 중요도를 기준으로 예산을 미리 배분한다. 예를 들어 어버이날, 지인 결혼식, 어린이날, 스승의 날 선물 순으로 중요도를 정하고 예산을 나눈다. 그리고 지난해까지는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선물과 현금을 같이 드렸지만 올해는 예산이 빠듯해 현금만 드리기로 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5월 가계 보릿고개에 허덕이지 않기 위해서는 가계 규모에 맞게 지출을 계획하고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이호경 씨티은행 서초타운지점 씨티골드 팀장은 "가령 가족 선물에 필요한 자금 규모를 100만원으로 가정했을 때 월 10만원의 정액 적립식 주식형 펀드 납입 기간을 3~5년 정도 중장기로 설정하고 가입하면 매년 5월 필요한 자금을 일부 환매를 통해 사용할 수 있어 일시에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