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빌려 집을 산 주택담보 대출자들의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집값에서 빚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기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선까지 위협하면서 본격적인 자산 디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LTV 40%를 적용 받은 일부 투기지역에서는 시장침체로 집값의 절반 이상이 빚으로 채워지자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투매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매도 ‘구애’에도 불구하고 매수세는 실종돼 거래도 거의 없는 상태다. 여기에 은행 금리는 날로 치솟아 대출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투기지역에서 ‘버블 붕괴’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착륙’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버블세븐 투자자 공포감 확산=부동산 업계와 국민은행에 따르면 집값이 최고점을 찍었던 지난 2006년 말 이후 강남ㆍ분당ㆍ용인 등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 하락폭은 평균 5%를 넘어섰다. 6억원 이상 고가주택의 경우 10% 이상 빠졌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분당신도시의 경우 105~109㎡형은 심리적 가격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6억원이 붕괴됐고 강남권의 10억~12억원을 호가하던 매물도 9억원대로 주저앉았지만 좀처럼 매수세가 붙지 않고 있다. 이들 지역에 2006년께 투자한 투자자 사이에서는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집값의 절반이 빚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용인 동천동 S공인중개의 한 관계자는 “2006년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 사이에서 내년부터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하다”며 “앞으로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신뢰감도 무너져 집값 대비 빚만 늘어나는 꼴이 되면서 ‘급급매물’까지 쏟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6년 중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은 금융권 전체를 통틀어 3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 대출의 상당수가 내년부터 원리금 상환에 돌입하게 된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원리금 상환 기일이 다가오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투매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은 아직 시기상조=부동산 전문가들은 그러나 집값 하락이 금융권 붕괴로 이어지는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LTV 평균은 올 6월 말 현재 48% 수준으로 미국의 94%에 비해 현격히 낮은데다 주택담보대출의 약정만기가 장기화돼 있어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금융권에서 이를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명숙 우리은행 재테크팀장은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이 낮은데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집값 폭락이 시작됐다고 말하기는 무리”라며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 확률은 낮다”고 분석했다. 이강욱 한국신용정보평가 책임연구원은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 판단하기 어렵다”며 “다만 부실화가 일어나더라도 시중은행이 이 쇼크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경착륙 막으려면 정부 대응 서둘러야=이처럼 금융권 동반 부실화의 가능성은 낮지만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집값 하락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집값에서 빚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공포가 확산되고 이것이 투매로 이어져 본격적 자산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지점장은 “양도세 완화 등의 규제 완화가 시장에서 전혀 통하고 있지 않다”며 “자산 붕괴가 본격화할 경우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금융권에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합수 국민은행 PB팀장은 이에 대해 “세계경제와 국내 부동산시장이 연동하기 시작했다”며 “공황 수준의 대패닉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추가 금리인하만이 유일한 대책일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다만 “초고환율로 정부도 추가적인 금리인하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당분간 이러한 하락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