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해외시장 공략의 최적기인데 국내 대기업들이 하청ㆍ납품업체들의 수출 족쇄를 풀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미래는 없습니다.”
권병하(사진) 세계한인무역협회(World-Okta) 회장은 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만난 자리에서 최근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진출 상태를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밝혔다. 국내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들에게 자사 납품만 허용하고 수출은 철저히 가로막으면서 중기 성장이 정체되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권 회장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최소 20~30년간 하나의 대기업에 얽매어 똑같은 아이템만 생산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 제품 다변화 등에 도전할 의지조차 잃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이익공유제 등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이 일정 비중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제품만 납품 받게 유도하는 등 중기의 해외진출에 대한 인센티브 정책을 내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이 국내 대기업보다 더 큰 글로벌업체에 먼저 납품하기 시작하면 대기업 입장에선 별도의 검증 과정 없이 그 회사 제품을 믿고 쓸 수 있고 중소기업 역시 높은 성장성을 확보할 수 있어 진정한 동반성장이 가능하다”며 “팔 게 없던 예전과 달리 이제 국내 중소기업 제품도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자신감을 가질 만하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스스로도 더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돌파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근 한류 열풍과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선진국 업체들의 부진 등으로 해외진출하기엔 지금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 조성됐다는 것. 무엇보다 막연하게 정부 지원만 바랄 게 아니라 최고경영자(CEO) 스스로 해외시장을 공부하고 부딪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권 회장은 “한국은 한류, FTA 등으로 역사상 해외시장 공략의 최고 기회를 맞았다”며 “여기에 글로벌 불황으로 유럽, 미국, 일본 업체들이 모두 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회만 잡으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데 많은 기업이 이를 놓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그는 “아직도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대다수가 수출국가를 골라내는 안목과 수출대상국가의 문화, 언어 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중소기업 육성에 관심을 갖고 제도를 잘 만들어 놓은 국가가 없는 데다 잘만 알아보면 세계한인무역협회를 비롯해 활용할 수 있는 수출기관도 많기 때문에 불평만 하기보다는 적극성부터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시장을 내다보는 안목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묻자 권 회장은 “CEO가 직접 해외에서 발품 팔고 고생해봐야만 자기 제품 수준과 공략 시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권 회장은 1세대 한상으로서 최근 청년들의 부족한 도전정신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청년들이 새로운 세계에 부딪히기보다는 국내에만 안주하려고 하니 실업 문제가 심화된다는 것.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 매년 100명 이상 뽑는 세계한인무역협회 인턴 가운데서도 80% 정도는 스펙만 채운 채 해외로의 취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권 회장은 “기성세대의 경우 해외진출 기회만 있으면 어디든 나가려고 했는데 이제 한국이 어느 정도 발전하고 나니 청년들이 해외에 나가길 주저한다”며 “취업은 물론이고 창업도 인건비가 부족하면 동남아라도 가는 등 용기를 잃지 말고 끈질기게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지난 1983년 말레이시아에 진출해 현재 산업용 고압전기제품 회사인 헤니권코퍼레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생산품의 95% 가량을 전세계 40여개국에 수출 중이다.
지난 2010년 10월부터는 세계한인무역협회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세계한인무역협회는 지난 1981년 해외동포 경제인들이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위해 설립된 단체로 현재 63개국 6,500여명의 CEO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현재 정부, KOTRA, 지방자치단체 등과 함께 국내 중소기업 수출지원, 차세대 한상 육성, 해외 창업ㆍ인턴십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권 회장은 “세계한인무역협회장을 겸임하는 것이 물론 회사에 큰 지장은 주지만 민족을 위하는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더 중요하다”며 “앞으로 민족 경제의 외연을 키우기 위해 한인경제 온라인 네트워크를 개발ㆍ강화하는데 역점을 둘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