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매장에 가보면 값을 판매가보다 싸게 후려쳐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미끼상품들이 있다. 이른바 '로스리더(loss leader)'들이다. 연초부터 로스리더들이 대형 할인점의 판매대를 점령하다시피 했지만 할인경쟁에 나섰던 마트들은 재미를 못 봤다. 대형 마트 '빅3'의 평균성적표를 봐도 상반기 단 몇 개월 동안에만 지난해보다 더 팔았을 뿐 이제 20여일 정도만을 남겨둔 올 한 해 장사는 거의 제로성장에 가깝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전국 대형 마트의 분기 평균 판매액이 전년보다 10% 이상 성장세를 보이던 것이 최근 1~2년 새 1~2%대까지 밀려났다.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다는 대형 할인점의 강점이 온라인쇼핑몰이나 편의점 등에 밀려 빛을 잃어가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대형 마트가 제조업체들을 이끌고 치열한 할인경쟁으로 시장을 주도해왔지만 이제는 가격할인 메리트가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점이 더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형 마트의 가격할인은 단기간 시장을 키웠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가격할인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넘어 더 많은 상품구입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반해 지금과 같이 성장둔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면 앞으로 가격이 더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만 커져 소비위축의 빌미만 주게 된다.
이 같은 점에서 최근 일본 유통시장의 가격파괴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000엔도 안 되는 브랜드 청바지로 대변되는 가격 파워게임을 두고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는 망국론까지 퍼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한국유통학회의 한 학술대회에서는 이 같은 가격파괴가 곧 '가치파괴'로 이어지고 있다며 일본 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일본을 닮아가는 한국시장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잇따랐다.
디플레이션 진입을 공식 선언한 일본 경제상황을 우리에게도 곧 닥칠 위기처럼 걱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최근 경기회복세가 주춤하고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할인 경쟁에 가속도만 붙는 것을 마냥 반가워할 일도 아니다.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데 소비부진이 지속되면 결국 투자와 고용이 줄고 다시 가격하락과 경기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다소 위축되고 있는 경기회복세를 만회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