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은행·신탁계정 분리 방안에 대해 은행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체로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단기적으로는 적잖은 문제를 안게 될 전망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안에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신탁은행을 차리는 것인 만큼, 관리·조직운용 면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은행 신탁부문 인력확충= 금감원이 발표한 계정분리 방안은 「은행 속에 은행」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 영업점에서는 신탁전담 창구를 마련하고, 그동안 일반 여신부서에서 담당한 신탁자산 대출심사도 별도로 실행해야 하므로 심사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지금은 한 임원이 신탁 외에 한두개 업무분장을 동시에 맡고 있지만 앞으로는 신탁전담 임원도 필요하다.
은행 관계자들은 대부분의 신탁부문 직원 채용이 은행 내부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내부 채용에 한계가 있을 경우 소폭의 신규 채용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독립사업부로 운영되는 신탁 부문이 수익을 내기 위해선 은행계정과 별도의 자산운용 전문가 영입이 은행별로 이뤄질 전망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신탁계정을 분리하는 영업조직 체제를 갖추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추가 인력수요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건전성이 관건= 오는 2000년 은행·신탁계정 분리과정에서 은행들이 가장 신경써야할 부분은 신탁자산의 건전성이다. 실적배당신탁은 자산운용에 따라 배당률이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고, 확정배당의 경우 부실화된 자산을 은행계정으로 메워야 하기 때문에 계정 분리를 앞둔 올 연말 결산 때 은행마다 은행계정에 적잖은 주름이 잡힐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중은행의 신탁담당 임원은 『특히 신탁계정에서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대출이 많이 나간 상태』라며 『지금은 워크아웃 여신을 요주의로 분류해 2%의 충당금만 쌓고 있지만, 워크아웃이 제대로 안돼 여신이 고정 이하로 하락하면 충당금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의 대규모 적자를 딛고 올해부터 흑자기조로 돌아설 것이라는 대다수 은행들의 기대와 달리, 신탁자산이 부실한 일부 은행은 올해도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은행들의 대처방안은= 우선 필요한 것은 자산을 건전하게 운용하는 일. 이를 위해 일부 인력은 은행 내부에서 선발되겠지만, 많은 은행들이 신탁자산 운용을 위한 외부 전문가를 채용했거나 할 계획이다. 조흥은행의 경우 자산운용전문가 3명을 이미 확보했으며, 한빛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증권사의 펀드매니저를 비롯한 전문인력을 영입할 계획이다.
독립채산제에 따른 부담으로 수익사업도 한층 강화될 예정이다. 시중은행의 한 신탁부장은 『앞으로는 ABS 발행이나 부동산투자신탁를 확대시키기 위해 외부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외국 선진금융기관과 업무제휴도 추진하는 등 신탁부문의 영업전략에 일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력을 확충하고 조직을 분리운용하려면 그만큼의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순수 대행업무 성격을 띠는 신탁부문에 있어 고비용은 곧바로 고객들의 수수료 부담으로 이어진다. 기존에는 신탁담당 직원들의 임금이나 경비도 모두 은행계정과 함께 처리됐지만 앞으로는 신탁계정이 철저한 독립채산제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이 받는 신탁보수율은 0.5~2% 수준. 기껏 전문가를 도입해 운용수익을 높여도 은행이 높은 수수료를 떼어낸다면 고객을 확보할 수 없다. 다만 경비 절감에 따라선 신탁보수를 현재보다 낮출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계정 정기예금의 실제 운용마진이 1% 미만인 반면 신탁계정의 마진은 1%를 조금 웃돈다』며 『원가를 효율적으로 낮추기만 한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수수료를 낮춰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시중은행들은 다음달부터 공동으로 원가계산작업에 착수, 계정 분리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설 계획이다. 【신경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