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로 세계 각국이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붓고 있고 이로 인해 새로운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는 점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선진국들과 비교해 재정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좋았기 때문에 28조4,000억원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단행했지만 지금처럼 재정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될 경우 우리도 결국 머지 않은 미래에 큰 짐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정적자 빠르게 커진다=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1ㆍ4분기 우리나라의 통합재정수지는 사상 최악인 12조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 흑자를 제외한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무려 21조9,000억원에 달한다. 불과 3개월 만에 정부가 당초 예상한 연간 적자액의 절반을 넘은 셈이다. 이는 세금은 깎아주고 재정사업을 크게 늘린 데 따른 당연한 결과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통합재정수지는 매월 비례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지출이 상반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내년 세수는 올해 기업여건을 바탕으로 이뤄지는데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됨에 따라 내년 재정여건은 대단히 열악하다”고 말했다. 적자폭이 커지면서 나랏빚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추경예산을 포함해 올해 우리나라의 나랏빚은 1년 새 60조원 가까이 불어난 366조원으로 예상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8.5%까지 올라가게 됐다. 올해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35조5,000억원, GDP 대비 관리대상수지는 지난해 -1.7%에서 올해 -5%로 나빠진다. ◇아직은 여유…방심은 금물=국제기준으로 보면 국내 상황은 아직까지는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3.2%로 주요20개국(G20) 회원국 평균인 -6.6%의 절반 수준이고 브라질ㆍ호주 등에 이어 20개국 중 5번째로 재정 수지가 좋을 것으로 예상됐다. 우리 국가채무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비율인 82%의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양호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전체순위 27위를 기록하면서도 재정정책(14위), 공공재정(16위) 등은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다. 국가채무가 증가일로에 놓이는 가운데 사상 최대 규모의 각종 감세조치가 더해지면서 국채발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국채발행 규모는 사상 최대인 81조6,000억원이고 이 중 적자국채는 36조9,000억원이다. 나랏빚이 이렇게 늘어나면 재정운용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다시 위기가 오면 지금과 같은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기도 어려워진다. 과도한 재정지출이 오히려 또 다른 경제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IMF는 한국의 내년 적자가 GDP 대비 -4.7%로 G20 회원국 중 재정적자 확대폭이 가장 클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오는 2012년까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30%대까지 끌어내려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사실상 번복했다. 선진국들이 빠진 ‘재정적자의 악순환’에서 한국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최광 한국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위기를 겪은 많은 나라들이 경기 후퇴기에 방만한 재정운용으로 경제위기를 악화시켰다”고 경고했다. 이재은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세로 대부분 세목의 세율을 낮춰놓았기 때문에 경기가 회복돼도 세수확보가 쉽지 않고 이것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