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2000원 인상에 증세 논란] "국민건강 핑계로 세수확보 꼼수"… 재정 압박 지자체엔 숨통

담배끊는 사람 예상보다 적으면 세수 더 늘어
"건강증진부담금 원래 목적 맞게 써라" 요구도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담뱃값 인상안을 포함한 ''종합금연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권욱기자


정부가 10년 만에 담뱃값을 무려 2,000원이나 인상하는 것에 대해 국민건강증진을 명분으로 세수확보를 꾀하는 '꼼수'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기보다는 정부재정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역사상 초유의 저물가 국면에다 선거가 19개월이나 남은 상황이어서 정치권의 협조를 얻기가 쉬울 것이라는 점이 정부 결단의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담배 한 갑(2,500원 기준)의 가격은 유통마진과 제조원가의 비중이 38%(950원)이고 나머지 62%(1,550원)는 세금과 부담금으로 구성된다. 세금과 부담금은 담배소비세(641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354원), 지방교육세(321원), 부가가치세(234원) 등이다. 한 해 걷히는 담뱃세는 6조8,000억원가량이다.

이번에 정부는 담배소비세를 1,007원, 지방교육세를 443원, 건강증진부담금을 841원, 부가세를 433원으로 설정해 4,5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한 해 2조8,000억원의 세금이 추가로 걷힐 것으로 예상돼 우회증세라는 비난이 나온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제시한 담배의 가격탄력도 0.425를 적용하면 담뱃값 2,000원 인상으로 담배 소비량이 34% 감소하지만 가격 인상폭이 크므로 세수는 늘어나는 것이다. 지방세의 경우 200억원가량 줄어들지만 국세가 늘어남에 따라 교부금이 더 많아져 연간 3,000억원 정도 지방교육청에 가는 돈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즉 기초연금을 비롯한 복지예산 확대로 인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정 압박을 단박에 해결해주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에 가격 인상에도 담배를 끊는 사람이 예상보다 적을 경우 세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국회 예산정책처는 담배 가격을 갑당 2,000원 올릴 경우 앞으로 5년간 23조6,479억원의 세금이 더 걷히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인상이 가능하도록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로 인해 세수 보전을 위해 건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는 반발이 거세다.

이와 함께 진정 국민건강을 위한 인상이라면 담뱃값에 포함된 건강증진부담금을 원래 목적에 맞게 금연정책에 활용해야 한다는 논란도 나온다. 현재 연간 약 2조원 중 95% 정도가 건강보험 지원에 쓰이면서 금연정책에 활용되는 규모는 1.3%인 234억원에 불과하다. 이번에 늘어나는 8,800억원의 건강증진부담금 중 일부를 사용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해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

관건은 2,000원 인상을 통한 흡연율 감소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나타나는가다. 지난 2012년 유럽연합(EU)의 담배규제위원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22개국의 담배 가격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담배 가격(2,500원)은 가장 저렴했고 한국의 담배 가격 중 세금 비중은 62%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치(70%)를 밑돌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OECD 건강통계상 남성 흡연율(15세 이상 매일 담배 피우는 사람의 비율)이 43.7%로 그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청소년 흡연율도 문제로 꼽힌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대책으로 8%포인트 정도 흡연율이 낮아질 것"이라며 "특히 청소년의 경우 가격탄력성이 3배 이상 높아 강한 금연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2004년 500원을 인상했을 당시 흡연율이 13%포인트 떨어진 것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담뱃값의 변화가 없었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흡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민층의 흡연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담배 관련 세금이 올라가면 고소득층보다는 서민층의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담배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소득역진성'이 심한 품목이다. 야당이 '서민 호주머니 털기'로 규정하며 강한 반발을 내세우는 이유다.

이로 인해 정부는 담뱃갑에 흡연경고그림 부착과 편의점 내 광고 금지, 금연을 위한 치료비 지원 등 가격 외 금연정책의 수위도 함께 높일 방침이다. 조성일 서울대 교수는 "가격정책과 비가격 금연정책을 모두 동원해야 오는 2020년 흡연율 29%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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