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지난 3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황영기 KB금융지주회장에 대해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결정했다. 금융위원회 심의ㆍ의결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은행 경영자에 대해 전례 없이 무거운 징계다.
이번 징계 결정은 한 개인에 대한 처벌을 떠나 실패한 경영의사결정을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지와 손실규모를 줄일 수도 있었던 후임 경영진과 그에 대한 징계 수위가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때늦은 조치도 책임
금감원이 황 회장의 법규 위반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논란의 확산을 원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세부 사실관계를 알지 못하는 제3자가 이번 징계 결정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감독당국이 밝힌 징계사유와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감독당국은 황 회장이 우리금융의 최고경영자(CEO)로 재임 중 위험성이 높은 파생상품 투자를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에 법규 위반이 있었기 때문에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우리금융이 사후적으로 막대한 투자손실을 입었다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법규 위반을, 그것도 CEO가 주도적으로 감행했다면 손실 발생 여부에 관계없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법규 위반을 감독당국이 적발하고 처벌하기까지 왜 수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감독당국이 법규 위반을 적시에 파악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우리은행이 1조7,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손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고 후임 CEO들의 책임소재도 보다 명확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감독 실패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황 회장에 대한 징계가 금감원의 결정대로 확정되더라도 연임만 불가능할 뿐 잔여임기에 대한 직무가 정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KB금융 주주들의 입장에서는 현직 CEO인 황 회장 선임 과정에 아무 말이 없던 감독당국이 몇 년 전의 법규 위반을 이유로 '부적격 선언'한 것만 해도 황당한데 "잔여임기에 대해서는 감독당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법이 그렇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금융기관 CEO로 적합하지 않을 정도의 중대한 법규 위반으로 징계 결정했다면 징계 수위를 해임으로 명확히 하는 것이 보다 책임 있는 감독당국의 자세일 것이다.
셋째, 언론보도를 보면 감독당국은 주주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것, 즉 실패한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도 엄격하게 물은 것으로 보인다. 찬반양론이 있지만 잘못된 CEO의 의사결정이 은행의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한 손실을 초래했다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다. 예금보호라는 정부의 보호막 아래에 있는 은행의 CEO는 위법이 아니더라도 실패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키코 징계의결보류' 납득 못해
그러나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한 바로 그 회의에서 금융소비자의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키코 문제에 대해서는 징계 의결 자체가 보류됐다는 점에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이나 주주이익 보호보다 몇 배나 중요한 문제다.
사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감독당국이 밝힌 황 회장의 법규 위반에 대한 판단 기준을 그대로 키코 문제에 적용할 경우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은행 경영진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의결 보류가 감독당국의 우유부단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 앞으로 고객손실을 초래한 금융기관 CEO의 경영의사결정에 감독당국이 얼마나 엄정한 잣대를 들이댈지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