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주역인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은 16일 특검조사에서 `정상회담 청와대 사전 기획설`과 `북 송금의 정상회담 대가설`을 부인했다. 특히 박 전 장관은 북 송금과 관련, “`7대 경협사업 대가`라는 취지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식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와 관련, 25일 종료되는 수사기간 연장을 추진하는 한편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서면조사를 신중히 고려하고, 박 전 장관의 대출외압 혐의를 확인하는대로 사법처리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특검 수사의 연장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사실상 특검수사가 내주 중반 종료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 사법처리 불가피= 특검은 이날 박 전 장관을 상대로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3~4월 정상회담 예비접촉(4회)에서 송금문제를 협의했는지 여부와 김전 대통령에게 현대측의 북송금을 사전에 보고하거나 이를 승인 받았는지 여부를 집중캐물었다. 이에 대해 박 전 장관은 “현대측이 먼저 정상회담 계획을 제안,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북 송금은 현대의 경협자금 성격이라는 식으로 보고했다”며 “책임질 일이 있다면 내가 지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또 2000년 5월 이기호 전 경제수석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의 3자 회동에서 현대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경위 등을 조사, 박 전 장관의 대출외압 혐의를 일부 확인, `직권남용` 혐의로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추후 불구속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검은 이날 당시 회담 주선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이기호 전 경제수석도 소환, 박 전 장관과 대질조사를 벌였다.
박 전 장관은 이날 “역사적인 정상회담에 대통령 특사로 참가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다시 그런 임무가 부여된다면 더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며 “협상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전적으로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DJ 서면조사 가능성= 김대중 전 대통령 조사 문제와 관련, 특검팀은 “아직 검토한 바 없다”면서도 “일단 기소한 뒤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떠보고 있다. 특검팀 안팎에선 일단 서면조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으나 특검팀으로선 박 전 장관이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직접적으로 김 전 대통령을 겨냥해야 하는 부담도 나름대로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김 전 대통령이 “북 송금이 통치행위로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안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청와대와 민주당도 북 송금 수사와 사법처리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실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특검수사 내주 수요일 마무리?= 특검팀은 이날 “수사범위나 수사기간 연장 여부는 특검팀이 판단할 문제”라며 수사기간 연장 요청 방침을 밝혔으나 키를 쥐고 있는 청와대측의 수용 확률은 일단 높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도 이날 남북관계 훼손우려를 들어 “정상회담을 사법적 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며 수사 연장과 김 전 대통령 조사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광본기자 kbg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