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김인영특파원】 지금까지 브라질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하고 변동환율제를 선택하면 국제금융시장에 아마게돈과 같은 대혼란이 발생한 것이라는 논리가 뉴욕 월가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브라질 정부가 15일 환율변동제한폭(밴드)를 해제하고, 레알화 환율을 시장기능에 맡겨버리자 전세계 주가가 폭등하며 이를 지지했다. 브라질이 더 이상 보유외환을 낭비할 필요가 없게됐고, 30%의 고금리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금융시장을 안심시켰기 때문이다. 브라질 위기에 대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은 일단 진정됐지만 레알화절하는 물가상승, 중남미국가의 통화절하 경쟁, 외채부담증가 등의 또다른 문제를 유발시키고 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브라질 중앙은행이 레알화 방어를 포기하자 상파울루 증시의 보베스파 주가지수는 이날 33.41%나 폭등했다. 상파울루에 증권거래소가 생긴 이래 사상 두 번째의 폭등기록이다. 브라질 국채가격도 14.5%나 폭등했다.
주변 국가인 아르헨티나의 메르발 지수 12.26%, 멕시코 불사 지수 7.78%, 페루 주가지수 5.57% 등 중남미 주가가 일제히 폭등세로 돌아섰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도 219.62포인트(2.41%) 폭등, 9,340.55에 마감함으로써 브라질 사태 이후의 하락세를 반전시켰다.
금융시장의 반응이 좋다는 것은 브라질 위기가 예상외로 빨리 호전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브라질의 페드로 말란 재무장관과 프란시스코 포페스 중앙은행총재는 급히 워싱턴에 날아와 16일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을 방문해 선처를 호소했고 미국과 IMF도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제임스 올펜손 세계은행(IBRD) 총재도 브라질 지원금 45억달러를 조기 집행할 뜻을 시사했고, 선진7개국(G7)정부도 미국의 성화에 못이겨 브라질에 대한 추가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이 배후에서 브라질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심리적 안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레알화는 지난주에만 15% 절하됐다. 시장참여자들은 브라질 정부의 변동환율제 채택이 경제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선 레알화가 절하됨으로써 브라질 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고, 브라질 기업 가동률이 놓아져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브라질은 현재 12%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통화절하를 통해 올해 실업률을 1%포인트 떨어뜨릴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또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외화수요가 줄어들어 외국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채택한 고금리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브라질은 지난해 11월 은행간 기준금리가 50%까지 치솟았고 현재에도 29%로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 대출의 경우 연간 150%의 살인적인 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브라질은 아시아나 러시아와 같은 파국을 일단 막았지만 새로운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걱정이 물가 불안이다.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초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70~80년대에는 연간 5,000~1만%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중앙은행은 인쇄시설이 모자라 지폐의 한쪽 면만 찍어 유통시킨 적도 있다. 페르디난도 카르도수 대통령 집권초기인 93년에도 2,000%의 인플레이션이 유지됐었다. 카르도수 정부가 어려움을 무릅쓰며 레알화 고평가를 유지함으로써 지난해 1.8%의 극히 낮은 물가상승률을 달성했었다. 그렇지만 레알화가 절하됨으로써 미국에서 들여오는 수입물자의 가격이 15% 인상돼 물가 자극 심리를 부추기게 됐다. 브라질의 통화 방어론자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술 한잔쯤으로 여기는 것이 물가』라며 레알화 방어 포기가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또다른 문제는 중남미 국가간에 통화 절하 경쟁이 붙을 가능성이다. 아르헨타나의 경우 브라질에 대한 수출이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다른 중남미 국가들은 브라질에 대한 수출 경쟁력을 갖추려면 통화를 절하할 수 밖에 없다. 에쿠아도르는 지난 14일 58%였던 금리를 140%로 인상함으로써 평가절하가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또 레알화 폭락으로 2,000억 달러 이상의 대외부채에 대한 부담이 무거워졌다. 외국 빚을 갚으려면 국내통화를 외국통화로 바꾸어야 하는데 부담이 통화 절하폭 만큼 커진 것이다. 브라질은 내달중 300억달러의 단기채무를 상환해야 하는데 외국은행들이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절하가 예상된다.
외국인 자금의 이탈도 아직 멈추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14일 20억달러를 빼냈고 15일에도 3억달러나 빼내갔다. 미 웰스파고 은행의 손성원 부사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레알화 추가 절하가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에 달러 유출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알화 절하는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본질적인 해결은 브라질 정부가 650억달러에 이르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IMF와 약속한 재정 긴축정책을 추진, 성공하느냐에 달려있다. 브라질 의회와 주 정부들이 카르도수 대통령에게 얼마나 협조하느냐, 국민들이 고통분담에 기꺼이 동참하느냐 여부가 진정한 위기 해결의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