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플랜트시장을 휩쓸고 있는 한국의 힘은 '빨리빨리'와 '보자기' 문화? 최근 세계 최대의 플랜트시장으로 꼽히는 중동 지역에서 한국 기업의 독주가 계속되면서 한국인 특유의 문화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스피드와 융통성을 강조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정서가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 플랜트사업의 특성과 맞아떨어지면서 한국 플랜트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 10일 업계에 따르면 올 1ㆍ4분기 우리나라의 해외 플랜트 수주는 총 124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3.8%나 급증했다. 이와는 별도로 전례 없이 대형 프로젝트인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전(186억달러)도 수주했다.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국내 기업이 올린 수주실적은 이미 78억달러를 기록해 연간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던 지난해의 105억달러를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월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가 발주한 와싯 프로젝트(21억달러)를 삼성엔지니어링과 SK건설이 수주한 데 이어 3월 같은 회사가 발주한 샤이바 프로젝트(28억달러)도 삼성엔지니어링이 도맡았다. 한국 기업이 중동의 굵직한 플랜트 공사를 모두 싹쓸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한국 기업이 세계 최대의 플랜트시장인 중동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와 문화가 큰 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설계에서부터 구매, 시공에 이르는 전과정을 아우르는 플랜트 사업은 무엇보다 융통성으로 각 프로세스 간 업무 협력을 원활히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때문에 한국 기업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 가능한 '보자기'처럼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해 현지 사업주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기업은 정형화된 네모진 '가방'처럼 정해진 원리ㆍ원칙만을 고집해 불만을 사고 있다. 이 같은 한국의 '보자기'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대안설계'. 대안설계는 플랜트 품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본래의 설계기준에 비해 기기 배치나 기자재 사양 등을 최적화해 비용을 절감하고 납기를 단축하는 설계기법이다. 실제로 삼성엔지니어링은 멕시코 만자니오 프로젝트에서 사업주에게 발전소 지붕 상부의 철판 용접법 개선을 제안해 시간과 비용을 모두 줄일 수 있었다. 또 한국 기업은 시공 전자재를 일괄 구매하는 대신 프로젝트 매니저가 주요 기자재의 가격변동 상황과 필요수량, 공사 스케줄 등을 보고 수시로 자재를 구매해 상당한 비용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그동안 한국인의 고질병으로 지적돼온 '빨리빨리' 문화도 한국의 플랜트 수주 신화 창조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하는 '패스트 트랙 시스템' 등으로 공기를 단축해 인센티브도 받고 수익성도 극대화하고 있는 것. 특히 최대 발주처인 중동이나 동남아의 경우 평소 느긋하게 일하는 것이 몸에 밴 현지 근로자를 독려해가며 공사속도를 높이는 것도 한국 기업만의 장점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 같은 공기단축 프로젝트로 사우디에서 진행한 플랜트 공사의 공급기일을 약 40~45일 앞당길 수 있었다. 같은 기간 동시에 공사를 진행한 다른 외국 기업이 6~10개월가량 납기를 지연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결국 사업주의 신뢰를 얻어 향후 또 다른 수주로 이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밖에 사업 파트너와의 끈끈한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는 한국의 기업문화도 수주 경쟁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기업은 사업주에게 귀책이 있으면 소송도 불사하고 새로운 요구사항이 있을 때마다 추가금액을 청구한다"며 "이와는 달리 한국 기업은 사업주의 귀책사유로 공기가 지연되더라도 일단 책임소재를 따지기보다 최대한 납기일을 맞추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현지 사업주의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