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銀+한미銀' 협상전부터 '삐그덕'

'하나銀+한미銀' 협상전부터 '삐그덕' [은행재편 중간점검] 우량은행간 합병구도 정부가 출자하거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은행들은 재편 구도가 구체화되고 있지만 이른 바 '티어-원(Tier One)'그룹의 우량은행들은 미래를 점치기가 갈수록 혼란스럽다.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하나ㆍ한미은행 합병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균열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위당국자가 흘려 일부 언론이 부풀려 보도한 '국민+주택'의 통합구도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은 상태에서 임직원들의 거센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금융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차 금융구조조정을 빨리 매듭짓는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적어도 우량은행들의 문제는 시장 내부의 규율을 무시한 채 정책논리만으로는 풀어나갈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물리적인 수단이 없을 뿐 아니라, 여론몰이식으로 해결하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나ㆍ한미 합병 장애물은 '실사'=칼라일-JP모건 컨소시엄으로부터 돈이 들어온 후 한미은행과 하나은행의 합병은 오히려 궤도에서 점점 이탈하는 분위기다. 컨소시엄 대변인 격인 김병주 칼라일 코리아 회장은 이곳 저곳 인터뷰를 통해 부정적인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칼라일측이 합병비율과 합병 이후의 주가에 대해 낙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미은행 증자 기념식에서부터 "하나은행에 대한 철저한 실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나, 직간접 경로를 통해 "하나은행의 자산내역을 믿을 수 없다."고 흘려온 것도 같은 맥락. 제3의 기관을 선정해 두 은행을 함께 실사하는 절차만으로는 못 믿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실사를 마쳐도 합병비율이 예상보다 훨씬 불리할 것으로 보고있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칼라일측이 내심 합병조건과 관련해 제동을 걸고 있다면 결국 최근의 냉랭한 기류를 풀어나갈 해법은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편법이 동원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합병을 선언하되 '실사'와 관련된 모종의 보완장치가 부가돼,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결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당국의 종용에 쫓긴 기형적인 아이디어일 뿐이다. ◇국민ㆍ주택 합병은 모럴해저드(?)=고위 당국자는 지난주 기자들과 만나 하나ㆍ한미 외에 또다른 우량은행간 합병이 가능할 것이라고 운을 띄웠다. 신한은행은 이미 독자 지주회사로 확정된 상황이기 때문에 남은 것은 국민ㆍ주택은행 합병조합 뿐이고, 일부 언론은 이를 기정사실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ㆍ주택은행의 합병은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우선 두 은행 모두 '홀로서기'가 가능한 대표적인 우량 소매은행이다. 유난히 점포 중복이 심해 통합할 경우 수천명을 감원해야한다. 보너스를 충분히 주고도 이익이 남아도는 두 은행이 정책의지에 순응하기 위해 합병을 결정하고 대규모 감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동시장 구조나 정서로 볼 때 만약 은행장이 그런 결정을 할 경우 '배신행위'로 몰릴 수 밖에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노조뿐 아니라 모든 임직원들이 걸려있는 문제다. 소매은행 두곳이 합쳐봤자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등의 논리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고위 당국자의 생각이 미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구조조정 성과'를 보여주는 일이 그만큼 다급한 것인지 의아할 뿐이다. ◇용기있는 은행장이 없다=사실 2차 금융구조조정과 관련된 우량은행들의 혼란은 은행장들에게도 책임이 크다. 정부는 합병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는 우량은행의 은행장들을 죄인으로 몰고 있다. 은행장들도 정부가 한마디 하면 고개를 숙인 채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한다. 소모적인 합병논란을 의연히 무시하고 다른 은행들이 혼란스러울 때 영업에 매진하는 우량은행이 한 곳 쯤은 나와야하지 않을까. 국민ㆍ주택은행쯤 되면 그럴 법도 한데 은행장들은 늘 "검토중"이다. 아예 죄인을 자처하려면 국민ㆍ주택ㆍ하나ㆍ한미등 4개 은행장이 한자리에 모여 밤새도록 짝짓기를 의논하는 편이 빠를 것 같다. 눈치보고 피하는데 익숙해진 은행장들의 속사정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부는 물론이고 자생력이 있는 일부 우량은행들마저 중심을 못잡고 비틀거리는 한 금융구조조정은 뻔한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성화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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