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계에서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통상임금의 산정범위 확대가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근로자의 소득감소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3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기업 500여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대처방안(복수응답)에 대해 가장 많은 기업이 '임금체계 개편(61.3%)'을 첫손에 꼽았다. 이어 '당분간 임금동결(25.9%)' '고용감축, 신규 채용 중단(22.5%)' '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 축소(21.9%)' 등을 차례로 제시했다.
아울러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할 경우 임금차액에 대한 부담으로 상당수 기업들이 심각한 경영타격은 물론 도산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통상임금 소송 패소시 지급해야 할 임금차액에 대해 응답기업의 절반 이상이 '전혀 감당할 수 없거나(18.2%)' '감당하기 어렵다(37.9%)'고 답했다. 반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거나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기업은 43.9%에 불과했다.
특히 임금차액을 부담하게 될 경우 응답기업의 절반이 넘는 53.2%가 '매우 심각한 경영위기에 놓이거나(20.6%)' '경영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32.6%)'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해 3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지금까지 통상임금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기업이 패소하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과거 3년치 임금차액과 소송제기 후 발생한 임금차액을 일시에 지급해야 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을 한꺼번에 부담해야 하는데 상당수 기업들이 이를 감당할 재정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대법원이 판결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결국 많은 기업들이 도산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종업원 54명이 일하는 정수기필터 생산업체 A사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폐업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건비가 25% 오르는 것은 물론 4대 보험료, 퇴직금도 함께 올라 현재 매출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원 수 404명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B사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과거 3년간 임금차액 64억7,000만원을 일시에 부담해야 한다. 또 향후 인건비 18.7%가 오르면 올해 당장 지난해 경상이익의 2.4배에 달하는 25억3,000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된다.
기업들은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인건비가 평균 15.6%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인건비 상승폭에 대해 가장 많은 기업이 '10~19%(34.1%)'를 전망했고 그 뒤를 이어 '1~9%(32.8%)' '30% 이상(18.8%)' '20~29%(14.3%)' 순으로 집계됐다.
대한상의 측은 "통상임금 문제는 소송에서 패소해 임금차액을 일시적으로 지급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인상된 임금을 부담해야 한다"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한 대법원 판례가 굳어질 경우 국내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람직한 통상임금 문제 해결방안으로 기업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기존 노사합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변경해야 한다(45.5%)'와 '정부의 행정지침을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39.5%)'고 제안했다.
박종갑 대한상의 상무는 "통상임금 산정범위가 확대될 경우 기업은 막대한 비용부담으로 투자와 고용창출이 위축되는 것은 물론 중소기업은 생존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라며 "국회와 정부, 대법원이 지금까지의 산업현장 관행과 노사합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