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대필' 강기훈 23년 만에 누명 벗어

"국과수 감정 신빙성 없다" 재심서 무죄 선고

운동권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줘 자살을 부추겼다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49)씨가 23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13일 1991년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돼 1992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던 강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시위 중 경찰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후 학생들이 정권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잇따라 분신하던 이른바 '분신 정국'의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전남대생 박승희씨와 안동대생 김영균씨 등의 분신에 이어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간부였던 고(故)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하자 검찰은 김씨의 동료였던 강씨를 자살의 배후로 지목해 구속 기소했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역시 김씨의 유서와 강씨의 진술서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고 이 증거에 따라 강씨는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만기 복역했다.

이 사건은 분신 정국에 대한 사회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국과수의 재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김씨가 스스로 유서를 작성한 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며 재심권고 결정을 내렸다.

강씨는 2012년 10월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아 이날까지 국과수 감정 결과와 과거사위 재감정 결과를 다투는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국과수가 강씨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는 감정 결과를 새로 내놓으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무너졌다.

재판부는 "1991년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신빙성이 없고 검찰의 다른 증거만으로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공소사실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부분이 재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의 형을 별도로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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