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포커스] 부패와의 싸움

요즘 한국과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통적 이슈는 '부패와의 싸움'이다.미국에서는 에너지 회사 엔론의 회계 조작 스캔들이 워싱턴 정가와 경제계, 뉴욕증시에 큰 파문을 던진데 이어 증권회사 메릴린치가 애널리스트와 짜고 투자가를 오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 언론들은 '부패한 월가'를 개혁하는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 아들의 비리 의혹을 비롯해서 권력층과 짜고 돈을 건넸다느니, 도피를 방조했다느니 하면서 몇 달간 시끄러웠고, 대선까지 부패가 주요이슈로 될 전망이다. 부패에도 경제 원리가 적용된다. 인간의 마음은 탐욕이 지배하고, 탐욕은 사회적 규범의 틀을 넘어설 것을 유혹한다.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컨데 월가 애널리스트는 말 한마디로 주가를 움직일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증권회사는 애널리스트를 앞세워 특정 종목의 주가를 띄워놓고 팔면 누워서 떡먹기다. 애널리스트도 적당히 소속회사에 충성하면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부패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경제 원리를 달성하는 지름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는 선의의 투자자에게 손해를 입혀 시장 경제의 공정성을 왜곡하고 있다. 미국에서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엔론 경영진을 믿었던 투자자들은 주식이 휴지가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부패는 세금을 탈루시켜 재정을 약화시키고, 심할 경우 한 나라의 경제를 붕괴시키는 독버섯과 같은 존재다. 러시아와 아르헨티나가 그 예다. 지저분한 부패 스캔들에서도 굿뉴스는 있다. 한국에서 과거처럼 정치권이 재벌총수를 불러 수백억원의 검은 돈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일은 없어졌고, 부패 단위가 겨우(?) 몇십억원 단위로 줄었다. 또 미국에서 회계 조작 또는 애널리스트 사기 사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건실한 시장 경제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면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과 미국에서 부패 스캔들을 다루는 과정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최고 통치권자를 겨냥한 정치적 폭로가 주 목적이라면, 미국은 비뚤어진 시장 원리를 바로 잡기 위한 자기 개혁 과정이라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뉴욕=김인영특파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