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퍼슨 사태'가 프로농구계를 발칵 뒤집으면서 외국인 선수 관리에 진땀을 빼 온 다른 구단들의 푸념도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창원 LG 데이본 제퍼슨은 경기 전 애국가 연주 때 헤드폰도 벗지 않고 혼자 스트레칭을 했다가 퇴출당했다. 이미 전부터 코트 안팎 태도가 팀에 해를 끼치는 수준이었다는 게 LG 구단의 설명이었다.
제퍼슨과 정반대로 모범적인 태도로 구단과 팬의 사랑을 받는 외국인 선수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34·미국)는 모범 선수로 첫손에 꼽힌다. 지난 2011년 처음 한국에 왔으니 벌써 5년째. 현역 최장수 외국인 선수다. 크리스 옥스프링(KT)도 한국에서 다섯 시즌째 뛰게 됐지만 중간에 호주로 돌아간 기간이 있었다. 다섯 시즌 연속 한 팀을 지키는 외국인 선수는 니퍼트뿐이다.
28일 프로야구 개막을 앞두고 니퍼트를 인터뷰했다. 2011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큰 키(203㎝)와 쌍둥이 메이저리거(동생 데릭도 메이저리그 출신)로 화제를 모았으나 지금은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태도로 더 유명하다. 팬들은 그를 '니느님(니퍼트+하느님)' '갓(God)퍼트'라고 부른다. 등판한 경기에서 공수 교대 때 그는 절대 먼저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법이 없다. 글러브를 부딪치는 제스처로나마 고생한 야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마지막 한 명까지 더그아웃 입구에서 기다린다. 팬들의 사인이나 기념촬영 요청에는 거절을 모른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그는 피곤한 퇴근길에 전동차 안에서도 마지막 한 명의 팬까지 챙긴다. 소외계층 어린이 1,000명을 야구장으로 초대해 야구공·모자·유니폼 등을 자비를 들여 선물하기도 했다. '나중에 한국의 야구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느냐'고 묻자 니퍼트는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2011년 15승 평균자책점 2.55를 시작으로 니퍼트는 4년 연속 10승 이상에 평균자책점 2~3점대를 지켰다. 이 사이 일본에서 솔깃한 입단 제의가 여러 번 들어왔지만 니퍼트는 그때마다 잔류를 택했다. 두산은 올해 연봉으로 150만달러를 니퍼트에게 안겼다. 니퍼트는 "두산과의 재계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골반 통증으로 5년 연속 개막전 선발 등판 기록은 잇지 못했지만 금방 마운드에 설 수 있단다.
홍성흔·오재원 등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우리말 단어들을 꽤 알아듣는 수준이 됐다는 니퍼트는 투수들 사이에서 리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어린 투수들이 소극적인 투구를 할 때면 경기 후 따로 조언을 하고 밥도 산다. 새 외국인 선수의 적응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기본이다. 그는 "어린 선수들이 나한테 고개 숙여 인사할 때 그러지 말라고 한다. 선후배 문화는 아직도 좀 어색하다"면서도 "물론 나는 선배 선수나 감독·코치들에게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며 웃었다. 제퍼슨 사태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물었으나 "대답하기 민감하다"며 피했다. 4년간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타자는 넥센 박병호와 KIA 김주찬이란다. "타이밍이 잘 맞아선지 내 공을 굉장히 편하게 친다"고 했다.
최근 자녀들이 미국 학교에 입학해 1년에 한두 달밖에 만나지 못한다는 니퍼트는 그래도 한국을 떠날 마음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야구를 계속해야죠. 단 팀에 도움이 될 정도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죠. 은퇴는 당연히 두산에서 할 겁니다. 은퇴 후에는 미국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