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이 국내 증시의 매수 주체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팔자에 나섰던 것과 달리 올해 들어서는 매수 폭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올해 시장을 바라보는 연기금의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뀐 만큼 증시가 적어도 주저앉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1조5,287억원 매수 우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한해 동안 1조3,180억원 내던지던 연기금의 국내 증시에 대한 시각이 180도 방향을 튼 모습이다. 특히 이날 136억원 순매도하며 순매수행진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연기금은 최근 19거래일 연속 주식을 쓸어 담았다. 최근 연기금의 순매수 랠리는 지난 2011년 11월부터 32일 동안 사들인 이후 가장 길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주가지수가 떨어지면 사고 오르면 내다팔던 연기금의 투자행태가 올해 들어 확연히 바뀌었다”며 “현재 주가지수가 박스권 상단에 있지만 올 한해 증시 전망을 박스권 돌파로 보고 꾸준히 주식 매수에 나서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연기금의 투자 행태 변화는 바닥 수준인 금리로 인해 채권 투자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것 때문”이라며 “내부 목표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전체 금융자산에서 주식 비중을 꾸준히 높여가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오성진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 역시 “지난해 글로벌 주식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증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며 “특히 글로벌 증시가 호황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의 디커플링 현상도 완화될 것이라는 믿음 하에 코스피지수가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 아래로 떨어지면 주식을 매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들어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한국전력. 지난 한해 동안 한국전력을 1,316억원어치 내던졌던 연기금은 최근 2달 동안 1,722억원어치 순매수하며 방향을 틀었다. 연기금은 또 삼성생명을 1,699억원어치 순매수했고 포스코에 대해서도 1,420억원 매수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밖에 LG디스플레이(1,243억원), SK텔레콤(1,231억원), KT(1,072억원)가 연기금의 쇼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연기금의 삼성전자 사랑도 이어지고 있다. 연기금은 지난 한 해 동안 1조391억원어치를 사들여 전체 상장 종목 중 가장 큰 규모를 사들인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1,011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엔터테인먼트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연기금은 지난해 CJ E&M을 90억원 넘게 내다팔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365억원 순매수로 가장 많이 사들였고 와이지엔터테인먼트도 100억원 넘게 매수하고 있다. 이밖에 서울반도체(265억원)와 파라다이스(147억원), 메디톡스(143억원) 등이 연기금의 순매수 상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전문가들은 연기금의 투자 행태 상 중소형주보다는 대형주들의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투자 기간을 장기로 보고 개별 종목 보다는 국내 시장 전체를 사고 팔기 때문에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들의 매수 비중이 높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성진 팀장은 “연기금의 자금집행 방식은 개별 종목보다는 마켓을 단위로 이루어진다”며 “따라서 수출주와 내수주 등 업종을 구별하기 보다는 각 섹터의 대표주 위주로 순매수하는 움직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기금의 수급을 개별 섹터나 종목별로 전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최근 매수세는 국내 증시의 하방 경직성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는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학균 팀장 역시 “연기금의 입장에서 보면 국내 주식시장은 좁은 투자 풀”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현재 낙폭이 큰 개별주들에 대한 관심도 있겠지만 인덱스형 투자로 시장 전체를 사고 파는 비중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