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도시를 바꾸자] 1-12. 도시문화 삭막하다

지난 1월에 부산시 서구 모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독거노인인 정모(여ㆍ64)씨가 집에서 사망한 지 보름만에 발견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것도 정씨 동생이 연락이 안돼 정씨 집을 방문하면서 발견된 것으로 만약 정씨 동생이 발견하지 않았다면 이보다 늦게 정씨의 사망이 확인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일은 지난 4월 전북 전주에서도 발생했다. 이는 신문의 사회면에 게재되는 단순한 사망사건이 아니다. 이웃간에 교류가 없는 한국도시의 삭막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인 것이다. 만약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간에 인간적인 유대와 동질감, 교류가 있었다면 사망한 지 보름이 지나서야 사체가 발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듯 우리나라 전통의 공동체 문화인 두레문화가 급격한 도시화 진행으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도시화와 함께 폐쇄성이 강한 아파트 주거형태가 확산되면서 메마른 도시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급격한 도시화 및 아파트 확산이 공동체 문화 해체= 공동체문화 복원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아파트가 급격히 확산된 게 공동체 문화를 삭막하게 만든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급격한 도시화가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인 두레문화를 무너뜨렸고 아파트 주거 형태가 갖는 폐쇄성과 익명성 등이 주민간의 교류를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주택부족률이 심각한 지난 80년대 이후 90년대초까지 무주택자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주거형태였다. 좁은 토지에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을 입주시킬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정부가 적극 육성한 대량생산품이었다. 현재 아파트가 전체 주거형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을 정도로 급속히 보급됐다. 정부라는 공급자 주도의 주택시장은 거주자의 주거욕구와 선호가 차순위로 밀려났고 `건설`위주의 주택정책은 이웃간의 관계에 대해 소홀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박사는 “아파트가 갖는 폐쇄성과 배타성, 단지배치의 획일성 등 하드웨어 측면 뿐만 아니라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난 가족중심주의라는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인해 도시 공동체 문화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2가구 중 1가구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는 이웃이 없다`= 이 같은 공동체 문화의 해체는 설문조사에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대한주택공사가 지난 2000년 8월 분당 신도시 시범단지 중 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웃간에 서로 가끔 왕래하며 지내는 경우가 있는가`라는 문항에서 `전혀 없다`로 응답한 가구수가 19.4%, 5집 이하`인 경우는 61.6%에 달했다. 특히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는 이웃이 있는가`가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응답한 가구수가 50.8%로 나타났다. 또 `5가구 이하`라고 응답한 가구수는 45.3%에 달해 사실상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단순히 얼굴만 알고 지내는 이웃의 수`의 설문에서는 전혀 없다가 2.5%, 5집 이하는 37.3%에 달했다. 국토연구원이 조사한 설문에서도 도시문화의 삭막함이 그대로 나타났다. 국토연이 지난 2001년 6월에 서울, 분당, 청주 소재 아파트 98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웃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편하다`가 66%, `이웃과 사람들이 나를 모르는 것이 편하다`는 질문에도 64%에 달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웃간에 서로 왕래하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주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될 경우 무너진 도시공동체 문화가 복원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주목되는 점이다. 이웃과의 원하는 교류 정도에 대한 설문에서 `얼굴만 알고 지내는 정도`로 답한 가구수는 22.3%에 불과했고 `가끔 서로 왕래하고 싶다`는 65.2%,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고 싶다`는 1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주택공사 진미현 박사는 “이웃간의 교류가 비교적 낮지만 되도록 많은 이웃과 친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이웃간 친밀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정자나 놀이터, 아파트 출입구를 개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mckid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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