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파킨슨 신도(信徒)

시간이 남아 주체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가장 바쁜 법이다. 시간 여유가 많은 노인들이 대표적인 예다. 어떤 노인은 손주에게 우편엽서를 보내는 데 하루 종일 매달린다. 문구점에서 우편엽서를 고르는 데 1시간, 안경을 찾는 데 1시간, 주소를 확인하는 데 30분, 실제 엽서를 작성하는 데 1시간30분을 쓴다. 길 건너 우체통으로 엽서를 넣으러 가기 앞서 우산을 가져갈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느라 또 20분을 허비한다. 바삐 움직이는 젊은 사람이라면 3분 만에 끝낼 수도 있는 일에 꼬박 하루를 투자한다. 이처럼 똑같은 일이라도 개개인의 가용시간에 따라 3분에 끝날 수도 있지만 하루를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많을수록 보다 더 복잡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시청 앞에서 반포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면서 굳이 반포대교를 건너지 않고 일산을 거쳐 행주대교를 넘어가는 식이다. 위의 얘기는 영국의 경제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이 “일의 많고 적음이나 경중(輕重)에 관계없이 공무원의 숫자는 늘어난다”는 이론을 설명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다. 파킨슨은 영국 정부의 공무원 수 증가에 대한 실증 분석을 통해 ‘파킨슨 법칙’을 발표했다. 그는 “공무원 수가 늘어날수록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에 일정한 비율로 공무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업무량과는 관계없이 공무원의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나날이 비대화되는 공공부문 파킨슨 법칙은 21세기 한국에서도 한 치도 틀리지 않고 실천되고 있다. 올 7월 재정경제부 등 4개 부처에 복수 차관제가 도입된 데 이어 최근에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이 장관급으로, 사무처장은 차관급으로 격상됐다. 지난해 10월 신설된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본부장 자리를 차관에서 장관급으로 높여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참여정부가 유달리 일 욕심이 많은 탓인지 출범한 지 3년도 되지 않아 정부 조직은 크게 확대됐다. 참여정부 들어 올 7월까지 공무원은 무려 2만3,000명이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동안 인건비도 당초 예산안보다 1조2,7000억원이나 초과 지출됐다. 기업이나 일반 국민들이 어려운 경제형편을 감안해 허리띠를 졸라 매는 반면 정부만 비대해지는 꼴이다.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조직 확대가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조직 확대는 쉽게 줄일 수 없는 경직성 경비의 증가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국가경제에서 정부 부문의 비중은 커지는 대신 민간 부문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최근 들어 세수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하자 “힘들어 못 살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조직이 커지면 규제도 늘어 부작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직과 사람이 늘어나면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일거리를 만든다. 그게 자연스런 속성이다. 하지만 파킨슨의 지적대로 같은 일을 더욱 복잡한 방법으로 처리하게 된다. 정부의 일은 ‘규제’라는 형태로 구체화된다. 규제는 대개 민간 부문의 숨통을 죈다. 기업 등 민간 부문은 이런 규제를 피하는 방법에 골몰한다. 그래서 규제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가 필요해진다. 나라 전체로는 비효율과 낭비의 악순환이 벌어짐은 물론이다. 정보통신부는 오는 2009년까지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 금지 규정을 3년간 연장하되 ‘3년 이상의 장기 가입자’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지’ 또는 ‘허용’ 같은 큰 틀을 제시하는 대신 이런 절충안을 만든 것은 이동통신 및 단말기업계의 사정을 두루 감안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런 절충안은 정통부의 추가 규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정부가 직접 보조금 지급 범위까지 정해줘야 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올 정도다. 정통부가 이통업계를 위해 마케팅 기획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셈이다. 심판이 휘슬을 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게임은 생명력을 잃고 만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 비대화가 우려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보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고 고용을 늘리는 일에 관한 한 정부보다는 기업이 훨씬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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