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경북 구미에 위치한 ㈜코오롱의 노동조합 사무실을 예고 없이 방문했다. 3월에 있었던 회장 자택 무단 점거의 생채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노조는 물론 회사 임원들도 바짝 긴장해야만 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노조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김홍렬 위원장과의 독대를 요청했다. 이 회장과 김 노조위원장의 30여분에 걸친 독대 이후 두 사람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상대방을 의심했던 불신의 눈초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 이 회장과 김 노조위원장은 급변하는 섬유업계의 현실에 대해 공유하고 새로운 회사를 만들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은 물론 동반자로서 협력할 것을 다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21일 구미공장에서 열린 민노총 탈퇴 여부와 관련한 찬반투표 결과 95.4%의 찬성률로 상급단체 탈퇴를 최종 결정했다. 코오롱이 18년여 만에 새로운 실험에 들어갔다. 88년 노조 설립 이후 정치적인 투쟁과 불신의 늪에서 한발짝 물러나 회사를 먼저 살리고 조합원의 복지를 추구하는 ‘선(先) 성장, 후(後) 분배’라는 카드로 재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송필섭 코오롱 노조 선전부장은 “88년 노조가 설립될 당시만 해도 노조의 설립 목적은 노조원들의 복지 증진에 맞춰져 있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원의 권익 대변은 뒷전으로 내몰린 채 정치적인 투쟁에 몰입하면서 노조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해 과거 코오롱 노조의 강경투쟁 노선에 대해 반성했다. 그는 “노조원들의 찬성률이 96%에 달한 것은 노조원들 역시 정치색이 가미된 투쟁에 염증을 느낀 데 따른 것”이라며 “노조 집행부는 물론 노조원들도 투표 결과에 잠시 당황했다”고 설명했다. 코오롱 노조는 이에 따라 노사 상생을 위한 새로운 노동조합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했다. 그는 “현재 화섬업계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가운데 코오롱 역시 기업체질 변신의 변곡점에 다다랐다”며 “일단 코오롱 거래처는 물론 지역사회에 변화를 추구하는 노조원들의 모습을 적극 알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품질개선과 생산성 향상에 힘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의 이번 결정은 코오롱이 아라미드 등 신섬유 개발과 폴리이미드(PI) 필름 등 첨단 전자소재 개발로 기업 변신을 꾀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로운 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지난해 3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기록하고도 스판덱스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을 내린 시점에서 노조원들의 회사를 살리기 위한 결단도 내려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