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메모리부문 “국보 1호 박사”/16·256메가 D램 세계 최초 개발/국내 24건·해외 48건 특허 획득「진대제」
삼성전자의 오늘을 있게 한 일등공신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다. 올해 45세인 그는 지난해 까지 맡았던 메모리부문에서 손을 떼고 비메모리부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메모리부문을 공략하라는 그룹의 특명에 따른 것이다.
「국보 1호박사」라고 불릴 정도로 기술개발과 설계, 조립, 양산공정, 시장개척과 마케팅 등 전부문에 걸쳐 통달해 있는 그는 반도체기술에 관한 한 절대적인 인물이다. 미포천지는 93년 그를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할 정도로 해외에서 그의 명망은 높다.
그는 집념이 매우 강하다. 취미인 테니스나 골프를 함께 친 사람은 그의 끈질긴 승부근성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이길 때까지 계속하자고 우기기 때문이다. 이같은 승부근성은 그가 89년 16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결실을 맺는다.
지난 85년 삼성전자와 인연을 맺은 그는 입사후 1메가D램 수율개선에 기여했고, 4메가D램 개발에 나서 이의 단위기억소자를 트렌치구조와 스택구조로 각각 설계·개발했다. 이 기술은 현재 양산 판매중인 4메가D램의 기술적 모체가 된 것은 물론 16메가D램 기반기술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87년 9월 D램개발의 총책임자로 스택셀구조를 진전시킴으로써 기술개발방향을 정립하고 89년 12월 0.6미크론급 초집적회로기술을 개발하고 90년 12월 양산용 16메가D램 개발에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16메가D램은 한국의 반도체기술이 선진국의 장벽을 뛰어넘어 독자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는 한국의 16메가D램은 92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최대의 시장점유율(20%)을 차지하고 있으며, 삼성이 세계 최대 D램 생산업체로 부상한데서 확인된다.
그는 92년 8월 국내최초로 64메가D램개발에 성공했고 메모리 전체의 개발책임을 지기 시작했으며, 고성능고부가제품으로 S램, 그래픽용 싱크D램 및 윈도램 등을 삼성의 고유한 사양으로 개발했다.
94년 세계 최초로 2백56메가D램을 개발해 세계 최고의 기술력확보를 입증함으로써 한국첨단과학기술의 입지를 드높였고, 2000년 약 1천억달러의 시장형성이 예상되는 메모리부문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16·64·256메가D램을 통해 개발된 여러가지 설계공정기술은 논문, 특허 등을 통해 공개돼 세계반도체산업의 발전을 리드했고, 이러한 반도체기술은 새로운 설비와 대단위투자를 필요로함으로써 국내관련 산업전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그는 현재까지 한국내에 33건의 출원을하여 24건의 국내특허와 전세계에 1백20여건의 특허를 출원해 48건의 해외특허를 획득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직 한계는 있다. 그는 IBM을 떠날 때 『일본을 집어 삼키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메모리부문는 해당할지 몰라도 비메모리부문에서는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는 시스템LSI부문 대표를 맡으면서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 부문에서도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인텔의 아성에 도전한다. 메모리에 이어 비메모리부문에서도 그가 세계 최고가 될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취미는 골프(핸디캡 12), 테니스, 볼링.<김희중>
□약력
▲52년 1월 20일 경남 의령 출생
▲70년 경기고 졸업, 74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 7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석사, 79년 미 MIT 전자공학과 석사, 83년 미 스탠포드대 전자공학과 박사
▲83년 6월 IBM 왓슨연구소연구원
▲85년 10월 삼성전자 미 현지법인수석연구원
▲92년 삼성전자 반도체부문메모리사업본부장·전무·부사장
▲97년 시스템LSI대표이사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