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질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자.」「21세기 경쟁력있는 한국」을 위해서는 연구·개발부문의 구조조정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
연구예산·지원금 감축이나 연구인력 감원과 같은 겉모습 다듬기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연구시스템 구축을 통해 충실한 연구결실을 거둘수 있는 질적인 구조조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겉모습 다듬기식 구조조정의 결과는 연구원들의 연구의욕만 떨어뜨리고 최고의 자산인 고급 인력들의 이탈만 유발시킬 뿐이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국가가 나아갈 방향에 맞춰 연구개발의 구조조정 내용과 원칙이 올바르게 정해진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비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언제 중단될 지 모르는 연구과제, 느닷없이 현장을 떠나게 될 수 있는 불안한 신분, 능력있는 연구원마다 총알같이 연구소를 떠나려만 드는 현실에서는 21세기 세계시장을 겨냥한 「한국 고유 기술」, 「고유 모델」을 만들어낼 수 없다.
「연구원들에게 실패할 권리를 주자.」
한국 고유의 기술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의 실패도 중요한 업적(?)이다. 뒤따르는 각종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앞선 연구의 실패경험과 결과를 토대로 시행착오를 줄여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성과에 가차없이 엄정한 평가를 내리는 미국, 독일 등 대부분의 기술선진국들이 실패한 연구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연구·개발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기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다음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연구원 신분을 유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민간 연구소는 물론 정부출연 연구소마저 손쉽게 이뤄낼 수 있는 연구과제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연간 평균 4,500억원의 연구예산을 사용하는 독일의 칼스루헤(KARLSRUHE)연구소의 홍보담당 피터 스펠링(PETER SPERLING)씨는 『국가가 지원하는 연구는 실패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들이어야 한다』며 『사회적 보험이라는 차원에서 이같은 과제를 진행하다보면 100개중 99개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중 1~2개만 성공한다해도 국가의 기반기술을 한차원 높여 세계시장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나 독일 등 기술선진국들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다.
「연구성과를 산업화할 수 있는 가교(架橋)산업을 키우자.」
정부나 기업은 연구와 관련한 지원만 해주면 「도깨비 방망이」처럼 산업기술이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다. 반면 연구원들은 연구원들대로 충실하게 연구만 하면 정부나 기업이 알아서 산업화시킬 것으로 믿는다.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최영락(崔永洛) 소장은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기술경쟁력이 차이를 나타내는 가장 큰 요인은 우수한 연구성과를 이끌어내도 이를 산업기술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최근 연구원출신들이 벤처기업을 차려 연구성과를 산업화하는데 일조하고 있지만 벤처기업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崔소장은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는 주요 기반 중에는 「R&D와 관련한 각종 지원서비스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라며 『행정이나 법률적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거나 벤처기업의 기술을 산업화시키는데 필요한 보조 연구 수행, 연구성과를 필요로 하는 수요처와의 연결 등을 전담하는 중간산업의 발달이 절실하다. 「가교 산업」이 발달하도록 국가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미흡한 부분을 보완받을 수 있도록 국내외 연구소 또는 정부출연 연구소와 민간연구소 간의 교환근무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단기 연구과제와 중장기 연구과제에 대한 별도의 관리·평가시스템 구축 연구원 안식년제 도입 연구성과에 대한 메리트시스템 확충 등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
『부모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인 것보다 과학자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회가 이뤄져야 합니다.』 취임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학인을 우대하는 풍토를 조성해줄 것을 요구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말이다.
대통령의 이같은 각오가 연구현장까지 스며들 수 있도록 토양을 구축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하루빨리 뒤따라야 할 상황이다.
「人材대국」의 기반을 굳건히 할 때 세계를 겨냥한 21세기 한국의 미래가 밝아온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할 시점이다.
/김형기 기자 KKIM@ 박희윤 기자 HYPARK@ 김상연 기자 DREA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