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 Joy] 혹시 나도…AIDS

■ 영화 ‘너는 내 운명’ 통해 본 실태
‘에이즈’ 이슈때마다 문의 급증
정상진단도 불신 수십번 검사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경우도

영화 ‘너는 내 운명’ 에서 황정민은 HIV에 감염된 아내 전도연을 사랑하는 남편역을 열연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너는 내 운명'은 에이즈 바이러스(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ㆍHIV)에 감염된 부인을 끝까지 사랑한 순박한 농촌 남성의 얘기를 그리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라는데, 일반인들에게도 과연 가능한 얘길까? 하긴, 현실과는 먼 얘기니까 영화의 소재가 됐으리라.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자. '혹시 내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아닐까?' 아마도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마음 한 구석이 괜히 찜찜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염려가 하루 이틀에 사라지지 않고 비정상적인 공포로 증폭돼 일상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증상을 에이즈 포비아(공포증)이라고 한다. 최근 에이즈 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소식이다. 실제로 일선 병원과 보건소에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증가했다. 에이즈 포비아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에이즈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시기에 급격히 늘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엔 영화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영화가 '어디까지가 실화냐'는 논쟁까지 일으킬 정도로 관객몰이에 성공하면서 엉뚱하게도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들까지 자극한 셈이다. 영화에서 황정민은 HIV에 감염된 부인을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무한대의 배짱(?)을 눈물로 연기했지만 현실은 분명 다르다. 일반인들은 대부분 에이즈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고, 심하게는 공포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 # 사례1

40대 남성.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뒤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는 상대 여성에 몸에 난 부스럼을 발견하고는 겁에 질렸다. 이 남성은 1~2주 후부터 피로감과 얼굴 화끈거림 등이 나타나자 에이즈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믿지 못했다. 에이즈 검사의 정확도가 99.9%라고 하지만, 자신이 0.1%에 해당할 것만 같았다. 확인을 위해 당시의 상대 여성을 찾아갔지만 그 여성은 어디론가 떠난 상태였다. 여자 또한 에이즈에 걸려 그곳을 떠났다고 판단했다. 이 남성은 DNA 검사를 포함한 30여 차례의 검사를 받은 끝에 정신과를 찾았고, 수개월간의 정신과 치료끝에 에이즈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났다. # 사례2

"나는 중국 출장 중에 에이즈에 걸린 게 틀림없다"는 30대 남성이 병원을 찾았다. 이 사람 역시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으나 결과를 불신하고 3일에 한 번 꼴로 병원에 들러 검사를 요구했다. 결국 의사가 "검사 결과를 믿어라.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면 검사를 더 받을 게 아니라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게 낫겠다"고 권하자 이 남성은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니 한 번만 더 검사를 해보자"고 우겼다. # 사례3

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았다. 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이 에이즈에 걸린 것 같다며 몇 달 째 잠을 잘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검사를 시키겠다고 했다. 학생이 에이즈를 의심하는 이유는 몇 달 전 귀를 뚫을 때 타인의 피가 묻은 것 같다는 것.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학생은 "설사와 미열이 반복되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 에이즈 포비아의 정체=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에 따르면 에이즈 포비아는 '건강 염려증'의 하나다. 강박적인 사람이 걸리기 쉬우며 반복적인 생각에 압도당해 우울해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증상이다. 많은 건강 염려증 가운데서도 에이즈 포비아의 증상이 특히 심각한 것은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연관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를 수치스러운 병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에이즈에는 동성애, 문란한 사생활 등 어두운 인식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게 사실이다. 에이즈가 특히 무서운 이유는 길거리에서 넘어졌을 때 흔히들 '아픈 것보다 창피한게 더 괴롭다'라고 하는 농담과도 같은 맥락이다. 질병 자체도 무섭지만 사회적인 시선이 더욱 두렵다. 특히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문가들은 "에이즈 공포증의 근저에는 사회와의 격리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리면 가족, 친구를 비롯해 사회와 단절된 공간에서 쓸쓸히 죽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포감이 더욱 커진다. 최근에는 에이즈 포비아에 시달리는 청소년들까지 늘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을 보면 초등학생까지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을 털어놓고 있는 실정이다. 홍 교수는 "병원을 찾는 사람 말고도 에이즈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이 꽤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피부에 반점이 있는 사람이 대화 중 침을 튀겼다며 에이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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