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시설 봉인제거북한이 21일 핵 시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작업에 돌입했다.
이번 조처는 북한의 단순한 엄포성 선언을 넘어서는 첫 구체적인 실력행사로 미국의 강력 반발은 물론이거니와 북한의 핵 재가동 파문이 유엔안보리 상정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도 커졌다.
하지만 북측의 이번 행동이 핵무기 개발 계획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연간 50만 톤의 중유 공급이 중단되자 당장 심각한 전력 난을 덜 뾰족한 수가 없어진 북한이 택한 고육책일 수 있다는 것.
북한이 핵 시설을 실제 재가동하는 데는 적어도 4~5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이 같은 행동을 감행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즉 전력난도 덜면서 다가올 대화 국면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압박 전술의 일환이란 얘기다.
◆전력 생산을 가장한 美 압박카드(?)
현 상태에서 북한의 핵 동결 해제가 핵무기 개발과 구체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같은 추측은 북한의 공식 반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핵 시설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에 나선 21일 노동신문을 통해 "핵 동결 해제 선언은 미국이 주장하는 '핵무기 개발계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특히 북측은 이번 조치가 "자체의 힘과 기술로 자립적 핵 시설을 건설하려는 것은 나라의 동력문제를 해결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해 미국이 중단한 중유 공급을 겨냥한 카드임을 시사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와 관련 "북한은 나름대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단계적 시나리오를 준비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의 반응이 없으면 더 강한 조치로 옮아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조처를 통해 실제 핵 개발 보다는 미국을 압박해 대화로 이끌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북미 모두 절실하게 대화를 원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보다 강한 압박 전술이 먹힐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북미 긴장 고조될 듯
북한의 원자로 봉인 해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꼬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계승하겠다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취해진 이번 조처로 한국 정부는 북미 사이에서 더욱 당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조치를 통해 한미간의 새 정책공조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관련 "북한의 추가 위반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추가 정보를 기다릴 것"이라며 일단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상태.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핵 시설의 재가동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