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부진으로 팔리지 못한 채 창고에 쌓여 있던 화장품, 의류 등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땡처리로 재고품을 싸게 구입한 상인들은 지하철이나 백화점, 시장 입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이라면 즉석에서 좌판을 깔고 길 가는 사람들의 충동 구매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터무니 없이 싼 가격에 팔리는 땡처리 물품들은 제조업체 및 정식 유통업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화장품의 경우엔 유통기한, 제조업체, 성분 등이 불확실한 것이 대부분이라 소비자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22일 지하철 잠실역 인근 지하상가에는 `A홈쇼핑 1,000원`이라는 판촉 문구를 내세운 란제리 좌판이 깔렸다. 포장도 되지 않은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각종 속옷엔 해당 홈쇼핑 업체에선 판매한 적이 없는 브랜드가 붙어 있었다. “처음 보는 브랜드”라는 말에 상인은 “브랜드만 다를 뿐 홈쇼핑 납품업체가 생산한 제품”이라고 대답했다.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롯데백화점 근처에는 `B홈쇼핑 5,000원`이라고 쓰여진 색도화지가 벽에 나붙었다. 같은 땡처리 란제리라도 가격 차이는 5배. 5,000원짜리 제품엔 TV를 통해 판매중인 유명 디자이너의 브랜드가 그대로 붙은 채 판매되고 있다.
이 제품을 판매하는 해당 홈쇼핑 업체는 “납품업체들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자 계약 내용을 위반하고 같은 디자인으로 제품을 생산, 물량을 싼 값에 다른 곳에 넘겼다”며 “위반 사항을 적발해 경고 조치까지 했지만 이미 빠져나간 물량이 길거리에서 유통되며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줘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길거리 유통의 또 다른 대표 상품은 화장품. 지난 해 극심한 판매 부진으로 각 업체마다 재고품을 떠 앉은 상태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자체 재고 처리에 나선 곳도 있지만 중간 도소매상들이 싸게 팔아 넘긴 제품들이 길거리로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엔 길거리 판매로 모자라 아예 소형 트럭에 화장품을 싣고 다니는 이동 판매상까지 등장했다. 이동 판매상들은 `화장품 1개 3,000원, 2개 5,000원` 등 제품의 종류나 용량에 관계없이 무조건 싸게 판다는 광고판을 붙인 채 골목 깊숙한 곳까지 파고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길거리 화장품들은 유통기한이 포장재에 찍혀 있더라도 조작 여부를 알 수 없고 유명 브랜드를 모방한 성분 불명의 제품이 많아 브랜드 이미지 손상 뿐 아니라 소비자 피해 발생까지 우려된다는 게 화장품 업체들의 걱정이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