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현지시간) 오후부터 7일간의 방미일정에 돌입한 가운데 국제사회의 관심은 미국이 아베 총리의 '역사 세탁'의 무대가 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근 미국의 대형 홍보사를 고용해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 이어 미국에서도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전 세계로 전파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과거사에 대한 아베 총리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연판장까지 돌리는 등 국제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29일 일본 총리로는 최초로 상하원 합동연설에 나서는 아베 총리가 어떤 대응논리를 보일지 주목된다.
이날 미 법무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16일 주미 일본대사관을 통해 워싱턴DC의 대형 홍보자문회사인 대슐그룹과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대슐그룹은 일본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정책적 이슈와 관련해 일본대사관에 자문 및 지원 역할을 하게 돼 있다. 일본 정부는 2013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초까지 버지니아주 정부의 동해 병기 저지,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설립 저지를 위해 전방위 로비에 나섰을 때도 워싱턴의 대형 로펌인 헥트스펜서앤드어소시어츠·호건로벨스 등을 고용한 바 있다. 이번 총리의 방미를 앞두고 고용된 대슐그룹 역시 아베 정권의 그릇된 역사관을 교묘하게 전파시키기 위한 홍보 참모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WSJ는 "이번 방미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정책이 아니라 그가 일본 패전 70년을 맞아 슬픔과 뉘우침을 새롭게 표현하는 데 있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라며 "아베 총리는 힘 있고 평등한 파트너로서 일본에 대한 비전을 납득시키는 것과 그의 역사관 때문에 생긴 의구심을 가라앉히는 것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으로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이 고조되자 그동안 아베 정부의 역사관에 비판적이던 미국 정부가 은연중에 태도를 바꾸고 있어 자칫 일본이 미국의 묵인 아래 과거사 문제를 얼렁뚱땅 덮으려는 '아베망각증(Abenesia)'을 보일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과거사에 대해 충분한 사죄를 하지 않는 일본의 아베망각증을 미 정부가 용인하려 하고 있다며 "이는 큰 잘못"이라고 27일 사설을 통해 지적했다. FT는 아베 총리가 70년 전 전쟁에 대해 일본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사죄를 끝낼 타이밍을 스스로 정할 입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후 70년을 맞아 과거사에 발목이 잡힌 한중일 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가운데 일본 외무성이 20년 후를 내다보는 중장기 외교전략 수립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세와 관련해 처음으로 작성한 외주 보고서 내용이 26일 공개됐다. '20년 뒤 아시아태평양 지역 질서와 일본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미국이 국내지향적 태도를 이어갈 경우 이 지역 정세가 "약육강식"에 빠지고 "중국이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일본은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또 일본 입장에서 '부정적' 시나리오가 실현될 경우 한미동맹 관계에 의구심이 발생하고 한국은 대일 강경대응을 이어가며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