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사가 제작한 직립 휴머노이드(인간형로봇) 아틀라스가 콘크리트 잔해 위를 사뿐히 걷는 장면에 과학자들조차 화들짝 놀랐다. 지난 7월엔 스티븐 호킹 박사, 엘론 머스크 테슬라CEO 등이 함께 ‘인공지능(AI) 킬러로봇 개발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 같은 걱정은 한국 로봇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오준호(56·사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장)의 기준에서는 기우다. 과학자로서 가공할 파괴력과 지능을 함께 가진 존재는 인간뿐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오 교수는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포스트휴먼학회 창립 기념강연회에서 “강력한 힘과 높은 지능을 한꺼번에 로봇에게 부여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과학자는 이 세상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영화나 보도를 통한 인공지능로봇의 왜곡된 영상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다”며 “하지만 무책임하게 창조된 피조물의 위험성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학자나 개발자”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자율성(autonomy)과 기동성(mobility)을 로봇을 이루는 2개 축으로 설명했다. 인간의 의도를 파악해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자율성을 높이려면 그에 따른 결과가 큰 피해를 낳지 않도록 기동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가령 스마트폰으로 궁금한 것을 물으면 대답해주는 인공지능서비스가 그 예다. 반대로 공장 자동화 로봇처럼 강력하고 인간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기동성을 부여하면 자율성은 최대한 낮춘다는 것이다. 그는 “자율성과 기동성의 역비례 관계는 로봇 공학자에게 딜레마이지만 깰 수 없는 룰이기도 하다”며 “더욱이 그 같은 인공지능 로봇의 구현은 아직 멀고 먼 길”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미 캘리포니아 포모나에서 열린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로봇 경연대회(DRC)’에서 오 교수가 이끄는 KAIST팀이 개발한 휴보가 전세계 24개팀 가운데 우승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방산업체 록히드마틴,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세계 최고를 달리는 팀들과 경쟁한 결과다. 1시간내 차 운전, 밸브열기, 벽 뚫기, 장애물 넘기 등 8가지 과제를 수행하면서 넘어지지 않는 로봇은 한국의 휴보뿐이었다. 오 교수는 “10~20년간 연구한 로봇이 쓰러질 때마다 참가자들은 탄식을 쏟아냈다”며 “단순 경진대회가 아닌 국가 자존심을 건 진검 승부였다”고 말했다.
군사형 로봇으로 잘 알려진 네발 달린 ‘빅독’이 산악 지형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공개됐지만 언제 어디서나 이 같은 성능을 실현하는 로봇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오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같은 일을 반복하도록 설계된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하도록 하려면 엄청난 에너지 손실을 가져온다”며 “더욱이 직립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뛰게 만드는 것은 현재보다 100배, 1,000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처럼 복잡한 프로그래밍으로 개발자조차도 원인을 모를 오류가 발생할 잠재적 위험성은 존재한다. 포스트휴먼학회는 과학기술 발달로 곧 다가올 이 같은 포스트휴먼사회의 문제점을 탐구하고 관련 법·제도, 정책 개발을 목표로 설립됐다. 백종현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인문학·로봇공학·법학·의학 등 전문가 35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오 교수는 “현재 각종 로봇제품들이 공작기계·가전 등으로 분류돼 있지만 인공지능로봇 기술이 발달을 거듭하고 상용화될수록 현재 법·제도와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사회적·법적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