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 바란다] 경제회복·민주화 혼선 안된다


한국 경제에 글로벌 경기침체 지속, 원고(高), 국내 투자ㆍ소비위축이라는 위기의 삼각 파고가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다. 첫째, 대외적으로 세계경제 대불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유럽은 최소 몇 년은 더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도 재정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재정절벽이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선 과중한 국가부채로 종래 같은 수준의 성장은 힘들다. 중국 경제도 30년의 고도성장 끝에 구조조정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침체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선순위 따져 단계적ㆍ조화롭게

둘째, 미국ㆍ유럽ㆍ일본이 위기 극복을 위해 전례 없는 무제한적 양적완화 통화정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원화 가치의 고평가가 적정 수준을 넘어 과도하게 지속되고 있다. 한국 경제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원ㆍ엔 환율이다. 1997년 금융위기 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도 원ㆍ엔 환율이 전고점 대비 15~20% 정도 하락한 것이 경상수지 악화를 통해 위기의 원인이 됐었다. 이번에도 원고 속 엔저로 원ㆍ엔 환율이 이미 전고점 대비 15% 정도 하락한 데 이어 내년에도 10% 정도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 대불황으로 수출 수요가 줄고 있는데다 원ㆍ엔 환율마저 추가 하락할 경우 한국 경제가 입을 타격은 심각할 것이다.

셋째, 대내적으로 투자부진과 소비위축이 심각하다. 투자는 이미 지난 2ㆍ4분기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재벌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민주화 열풍으로 재계는 신규투자는커녕 숨을 죽이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도 막대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경기침체로 위축되고 있다. 장기침체의 전조로 해석되고 있는 부채디플레이션(물가 하락→실질금리 상승으로 이자부담이 커진 채무자나 신용축소로 자금난에 빠진 개인ㆍ기업이 빚을 갚거나 자금 마련을 위해 부동산ㆍ주식 등을 처분해 물가가 더 하락) 양상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지속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우리 경제는 투자ㆍ소비ㆍ수출 부진으로 성장률이 계속 떨어져 올해 2% 성장도 힘들다. 내년에도 여건 개선이 없는 한 3% 성장도 어려운 L자형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연히 고용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제활동인구 2,570만명 중 상용직은 1,100만명 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임시직ㆍ일용직ㆍ자영업자다. 투자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실정인데 공약한 경제민주화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가 최대 과제다.

이처럼 새 대통령이 당면할 경제현실은 안팎으로 험로뿐이다. 취임 초기에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만 경제와 사회가 안정되면서 성공한 대통령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취임 초기부터 경제민주화와 위기 극복이라는 일견 상충돼 보이기도 하는 두 엄청난 어젠다 속에서 혼선을 보여서는 안 된다.

첫째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경제위기 극복의 조화로운 추진 방안을 찾아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일이다. 경제민주화는 국민에게 공약한 사안이고 위기 극복은 당면한 과제다. 해결 방안은 우선 시급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시행하고 나머지는 경제회복에 맞춰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위기 극복에 매진하는 것이다. 우선 시급한 경제민주화 정책으로는 대ㆍ중소기업 납품단가 문제 등 불공정거래 시정과 재벌총수의 과도한 전횡 방지다. 이러한 조치를 충족시키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 촉진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경기침체 선제적 대응 위기 넘어야

둘째 과제는 부채디플레이션 해결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기불황으로 간다. 18조원 규모의 기금 조성, 취득세 감면 연장,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 나름대로 실현 가능한 정책을 공약하고 있지만 미진한 부분이 없는지 정책 수립 단계에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는 환부가 남아 있으면 곧 더 큰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셋째 과제는 재정ㆍ통화ㆍ환율정책을 확장 기조로 유지해 경기침체에 대응하면서 글로벌 통화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을 잘못하면 위기가 온다는 것이 1997년과 2008년 위기의 교훈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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