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잊을 만하면 일이 터진다. 이번에는 헝가리다. 새 정부가 직전 정부의 실정을 비난하면서 '디폴트(국가부도)' 가능성을 언급한 게 화근이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그리스ㆍ스페인 등 남유럽을 넘어 동유럽으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덮쳤다. 국제통화기금(IMF)ㆍ유럽연합(EU)ㆍ신용평가사들의 진화로 진정되고는 있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유럽위기 단기간 진화 어려워
뉴욕타임스는 유럽의 위기를 신뢰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유럽 각국과 은행들은 서로 얼마를 꾸고 빌렸는지 정확한 내역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은행 간 불신과 대출금리 상승, 신용경색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이 취약한 스페인ㆍ그리스 등 남유럽 4개국은 올해 상환할 국채 가운데 71%(2,448억유로)의 만기가 이달부터 오는 9월까지 집중적으로 돌아온다. 이들 나라의 형편을 보면 연장이 최선이다. 유로존이 4,400억유로의 재정안정기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그러나 재정적자에서 벗어나려면 경기가 살아나고 세수가 늘어야 하는데 유럽 경제는 지금 바닥이다. 유럽 위기가 단기간에 끝나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는 헝가리 사태에 대해 '별거 아니다'라는 반응이다. 국내 금융회사가 헝가리에 갖고 있는 대외채권이 미미하고 헝가리에서 빌려온 돈도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리스 사태 때 듣던 얘기다. 맞는 말이다. 그리스ㆍ헝가리 등 개별 국가와 단기적으로 볼 때의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범위를 넓혀 유럽 전체와 장기간으로 보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유럽이 시스템 리스크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유로존은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긴축정책을 선택했다. 지난주 주요20개국(G20) 부산회의에서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들이 세계 경제의 회복을 위해 재정의 '탄력적' 운용을 주문했던 것과는 상반된다. 유로존의 긴축은 미국의 경기회복 지연과 중국의 긴축 가능성 등으로 세계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염려스럽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은행(FRB) 의장은 "더블딥은 없다"고 말했지만 원자바오(
溫家寶) 중국 총리는 "세계 경기의 회복세는 취약하며 다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선진국은 장기 저성장 또는 더블딥의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고 밀했다. 긴축은 유로존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글로벌 경제회복을 더디게 함으로써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와 유로존의 긴축은 이제 막 회복국면에 들어선 우리에게 이중의 부담이다. 재정위기에 따른 글로벌 금융불안과 실물경기 둔화 가능성에도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내적으로 천안함 사태 이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지방선거에서의 여소야대로 인한 정책혼선이라는 불확실성도 커졌다.
하반기 경기둔화에 대비해야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경기가 상반기에 좋다가 하반기에 둔화되는 상고하저를 예상하고 있다. 기업들도 물가ㆍ금리ㆍ원화가치 상승이라는 이른바 3고현상으로 경영환경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닥쳐올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위기 때마다 겪는 급격한 외환유출을 억제할 수 있는 안전장치 구축이 시급하다. 외환보유액 확충, 외환 유출입 모니터링 강화 및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을 마냥 미룰 수도 없지만 더블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 정리에 속도를 내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모든 게 유비무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