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칼럼] 다윈과 카오스

다윈의 진화론은 한마디로 ‘환경 변화에 생존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진화하는 자연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화분(花粉)은 식물들의 생존전략을 알려주는 작은 지도다. 화분들은 어떻게 하면 오랜 기간을 생존할 수 있고 수분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가를 고심한 듯한 흔적들을 온갖 기기묘묘한 형태를 통해 보여준다. 소나무에 솔방울이 유난히 많이 달리면 환경오염이 심해졌다는 증거로, 이는 소나무가 소위 그 ‘자손’들을 가능하면 많이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그 생존전략이 훨씬 더 처절하다.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주는 도마뱀, 17년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다가 비상하는 매미, 그리고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뇌를 진화시킨 인간의 경우 등등 이 모두가 생존의 몸부림인 것이다. 그래서 생물들은 이러한 진화를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본 유전자와 함께 소수의 진화 가능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같이 키운다는 학설이 있다. 우리가 퇴치해야 할 암도 인간의 진화에 대비해 준비한 돌연변이 인자가 환경에 따라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진실로 기묘한 생존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윈은 생물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거의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 진화했으며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최신 수학인 ‘카오스 이론’도 다윈의 진화론에 맞춰 조명할 수 있다. 냄비 속의 물이 끓을 때 바로 1초 뒤에 어떤 모양으로 끓는가 하는 것은 지금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슈퍼컴퓨터를 다 연결해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다. 모두가 ‘비선형(non-linear)’인데다 변화시키는 변수가 너무 많아 이에 대한 계산을 제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오스 이론에서는 미래를 만드는 큰 변수를 두 가지로 보고 있다. 그 첫째는 어떤 일을 만드는 인자(因子)가 존재할 것. 그리고 두번째는 그러한 인자가 있다면 언젠가는 크나큰 변화, 소위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로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며칠 뒤 뉴욕에서 태풍이 분다는 믿을 수 없는 가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인자’와 ‘나비 효과’와의 상관관계는 도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도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이 팽배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고 미국의 9ㆍ11 사건도 쌓였던 증오가 커지면서 생겨난 참극인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으로 설명한다면 현재의 인간은 바다 속 미생물이 가진 ‘생존이라는 인자’가 환경 변화에 따라 ‘나비 효과’에 의한 진화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변화를 감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좀더 편하게 살겠다고 사용하는 화석연료가 결국 일산화탄소를 증가시켜 ‘비닐하우스 효과’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인류는 떠안게 됐다. 북반구의 빙하가 녹으면서 따뜻한 해류의 유입을 막아 반구가 모두 순간적인 빙하기로 돌입하게 된다는 것은 영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가능한 시나리오다. ‘편이성’의 추구가 결국 변화에 둔감하게 만들고 그것이 결국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로닉하다고 하겠다. ‘변화’란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것이기보다는 환경 변화에 따른 생존을 위해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조직 및 구조의 생존 또한 이와 같은 ‘자연법칙’을 따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30년 전 우리나라의 30대(代) 기업으로 거론된 기업 중 현재의 ‘30대 기업’에 든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은 ‘생존’을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자연스런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조직은 그래서 미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보다는 편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늘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변화를 원하는 인자(因子)가 있다. 바로 정치 개혁이다. 정치만이 아무런 진화 과정 없이 구태를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정치 지도자나 권력자들이 국민을 향해 거짓말을 하고 선거에서 공약(空約)을 남발해도 이제 국민들은 ‘그러려니’ 한다. 그것은 ‘허용’이 아니라 불신이며 권력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냉소이다. 이 ‘불신과 냉소’라는 나비의 검은 날갯짓이 우리 사회의 허약한 부위를 단 한번의 ‘쓰나미’로 강타해버릴 위험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바로 정치 개혁이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인 이유이다. 개혁이 없는 우리의 미래가 암담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다만 그 개혁은 ‘정략’이 아닌 ‘진정성’을 가진 것이어야 함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개혁의 실마리는 모든 국민이 원하는 개혁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어디로 향해 있는가를 읽는 것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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