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집 사자"… 비강남이 움직인다

높은 전셋값·대출금리 인하에 실수요자들 매매로 눈돌려
관악·강서·도봉 거래 늘고 가격 1000만~2000만원 올라

서울 비강남권에서 전세난으로 인한 실수요자들의 매매 전환이 잦아지면서 아파트 및 빌라 거래가 늘고 일부 단지는 가격도 조금씩 오르는 모습이다. 서울 성북구의 아파트 밀집 지역 전경. /=연합뉴스


결혼 6년 차를 맞는 장모(39)씨는 올해 집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굳이 집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2년마다 올려주는 보증금이 그를 피곤하게 했고 무엇보다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셋값과 크게 차이 나지 않아 조금만 돈을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을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장씨는 "지금도 전세대출을 이용하고 있지만 3,000만원 정도 더 대출을 받으면 인근에서 비슷한 평형대의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집값이 크게 오를 것 같지는 않지만 더 떨어지지도 않을 것 같고 이자도 많이 내려 전세보증금에 시달리기보다는 집을 사는 게 나은 듯하다"고 말했다.

기존 매매시장의 침체 우려에도 연초부터 비강남권 아파트의 거래가 늘고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비강남지역의 실수요자들이 전세난을 피해 아파트 매매로 시각을 옮기면서 연초 시장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의외로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되는 수요가 적지 않은 모습"이라며 "실수요자 중심으로 연초 주택시장을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강남권 아파트 1,000만원 안팎 상승=25일 업계에 따르면 연초 비강남권 아파트의 거래가 늘면서 가격도 1,000만~2,000만원 정도 상승하고 있다.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원 힐스테이트 59㎡(전용면적 기준)는 지난해 말보다 1,500만~2,000만원 오른 3억4,000만원 정도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실제 입주하는 사람들이 매매에 나서면서 급매물이 상당 부분 소진됐고 이 때문에 전반적으로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것이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관악구 신림동 신림현대아파트 59㎡도 지난해 2억6,000만~2억7,000만원 정도에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2억8,000만원의 매물도 나와 있다. 금천구도 상황은 비슷해 독산동 한신아파트 89㎡의 경우 올해 들어 1,000만원 정도 오른 3억4,000만원 안팎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신림동 D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 이후부터 아파트 거래가 조금씩 늘어나는 모습"이라며 "올 초에도 문의가 꾸준하고 집을 보러 다니는 젊은 부부들도 눈에 많이 띈다"고 전했다.

주택 거래량도 비강남권의 약진이 눈에 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4일 현재 서울지역 아파트 거래량은 4,924건으로 지난해 1월 전체 거래량(5,544건)의 89% 수준이다. 이중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비중은 지난해 19.2%에서 올해 16.7%로 2.5%포인트 가량 줄었다. 반면 강서·도봉·구로·은평 등은 지난해보다 비중이 높아졌다.

◇매매전환수요가 버팀목…저렴한 아파트에 수요 몰려=비강남권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전세에서 매매로 전환하는 수요다. 비강남권의 경우 전세보증금에 일부 대출을 받으면 집을 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98년 이후 최고 수준인 65.7%를 기록했으며 성북구·서대문구 등 비강남지역은 대부분 70%에 가까운 전세가율을 보이고 있다.

아울러 올 들어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세대·빌라의 거래량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 같은 실수요자들의 움직임과 관계가 깊다는 분석이다. 이달 다세대·빌라 거래량은 2,053건으로 이미 지난해 1월 거래량(2,024건)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가 여전히 세입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데다 강남권 재건축 이주가 본격화되고 입주물량이 줄어드는 올 봄 이후에 전세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여서다. 아울러 청약 1순위 기준 확대로 분양시장 경쟁률이 높아지게 되면 기존 주택으로 눈을 돌리는 수요자들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앞으로도 매매로 전환하는 세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실수요자의 경우 호가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빠져나오고 다시 가격이 낮아지면 매입에 나서는 경향이 강해 아파트 가격은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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