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혐의 피고인에 무죄 선고
가지런히 접은 청바지… "의심 들지만 확신 못해"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co.kr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자와 이를 강력히 부인하는 남자. 이색적인 증거는 모텔방에 가지런히 벗어놓은 여자의 청바지. 법원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성폭행범을 엄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법원은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유죄를 판단할 수 없다며 결국 무죄판결을 내렸다.
22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A(남)씨는 지난 2006년 10월 친구와 인천의 모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그곳에서 A씨는 B(여)씨와 그의 친구를 만났고 네 사람은 결국 모텔을 찾았다. A씨는 B씨의 친구와 모텔방에 들어갔으나 성 관계에 실패했고 방에서 나오던 중 친구를 기다리던 B씨와 마주쳤다. A씨는 B씨를 붙잡고 다시 모텔방으로 들어갔으나 얼마 후 B씨는 6층 방에서 창문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려 전치 20주의 중상을 입었다.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당시 모텔방은 마치 싸운 것처럼 어지러웠다. 하지만 성폭행 상황의 증거라고 보긴 어려운 B씨의 청바지와 속옷이 가지런히 접혀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검찰은 "B씨가 성폭행 위협을 받아 목숨을 걸고 뛰어내렸다"며 A씨를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3부(심상철 부장판사)는 A씨에 대해 1심과 달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상대로 강간치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벗기기 힘든 청바지를 입었고 ▦그 청바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는 점 ▦피고인이 화장실을 간 동안 피해자가 충분히 도주할 수 있었는데도 도주하지 않은 점 ▦마지막으로 피해자가 우울증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이와 관련, "성폭행 사건이라 해도 피해자의 진술과 상식적인 정황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상 의심이 든다는 이유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는 취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