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촌 흑연광산 준공식에 참석한 정촌 주민들이 양복과 한복을 차려 입고 식장에 앉아 있다. 정촌 주민 오른쪽으로 남측 참석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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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오전7시 평양 양각도국제호텔. 도요타 크라운을 선두로 벤츠200 4대, 그랜저XG 1대, 대우 버스 1대, 관광버스 4대가 줄줄이 정문을 빠져나갔다. 남북 첫 합작 광산인 황해남도 연안군 정촌 흑연광산 준공식장으로 향하는 이들 차량에는 남측 관계자 150여명이 나눠 타고 있었다.
평양에서 정촌까지는 고속도로 110㎞, 비포장도로 79㎞를 합쳐 총 189㎞. 남측 인사들을 인솔하는 광업진흥공사의 한 관계자는 “4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인데 북측이 낙후한 시골을 공개하기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했다. 평양ㆍ개성ㆍ금강산이야 북한 측이 정성껏 관리하는 곳. 그러나 시골 구석이라 할 수 있는 정촌으로 가는 길이기에 북한 측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북측 안내원은 “평양~정촌간은 군사지역”이라며 “차량 이동 중 사진촬영은 절대 금한다”고 강조했다.
비교적 번잡한 느낌이었던 평양을 벗어나 개성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만났다.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톨게이트는 없었다. 차량 행렬은 왕복 6차선 중 개성 방향 3차선 전부를 차지하며 도로 한가운데를 내달렸다. 고속도로라고는 하지만 갓길에 간혹 자전거를 모는 사람, 터벅터벅 걷는 보행자도 눈에 띌 정도로 한가했다. 그만큼 통행 차량이 뜸한 것.
도로 양 옆으로 들판이 펼쳐졌다. 간혹 못자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남정네들과 실개천에서 빨래를 하거나 밭일을 거드는 여인네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양에서 멀어질수록 마을 수는 줄어들고 크기도 작아졌다.
남쪽으로 1시간30분가량을 거침없이 달리던 차가 방향을 한차례 크게 틀었다. 황해북도 평산에서 황해남도 정촌을 향해 서남쪽으로 돌면서 고속도로가 끝난 것이었다. 비포장도로는 자동안마기가 작동하는 듯했지만 견딜 만했다.
산이 갑자기 큰 모습으로 다가왔고, 논밭들은 자잘해졌다. 그러나 흙바닥이 그대로 나타날 정도로 산은 빈곤해 보였다. 나무도 거의 없었다. 주민들이 땔감용으로 나무들을 마구 잘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당을 찬양하는 구호 일색인 평양과 달리 ‘보물산ㆍ황금산을 만들자’는 산림진흥 표어가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북한 사람들이 겪는 에너지난은 가는 전선줄과 녹슨 철탑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큰길을 따라 이어지던 전깃줄이 마을 안쪽으로는 끊겨 있었다.
북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거나 하던 일을 접고 삼삼오오 모여 긴 차량 행렬을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너와지붕 위로 올라간 아이들 서넛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간간이 손도 흔들었다. “마을 모습이나 사람 행색이 딱 우리 60년대 초”라는 말이 옆자리에서 튀어나왔다.
비슷한 풍경에 지루해질 즈음 개인 용무가 급해지는데 북측 안내원은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중간 정차는 절대 안 된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산길에서 두 차례를 쉬었다. 공기는 달콤할 만큼 상쾌했다.
오전11시 10분 전. 인적 드문 시골 논밭 사이로 현대식 철골 공장이 나타났다. 정촌 흑연공장에서 준공식을 마친 뒤 평양에서 구입한 한반도 지도를 펼쳤다. 황해남도 연안군 정촌은 평양이나 개성보다 강화도가 훨씬 가까웠다. 같이 지도를 더듬던 남측의 한 기업인이 “강화도에서 다리를 연결하면 한 시간도 안 걸리겠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다른 기업인은 “돌아왔지만 북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냐”고 했다. 지도 주위로 원을 그리며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