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상장이 폐지되는 제도인, ‘즉시퇴출제’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1심을 뒤집고 고등법원에서 나와 즉시퇴출제 존폐 여부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된다.
그 동안 법정관리 신청과 동시에 거래소에서 퇴출당한 기업들이 소송을 제기해 왔으나 국제상사 사건을 제외하고는 1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그러나 이번 고등법원 판결로 기업회생을 더 어렵게 하는 ‘즉시퇴출제’가 퇴출되야 한다는 반대입장과 주식투자자 보호를 위해 존속해야 한다는 찬성 입장이 대법원에서 다시 맞붙게 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 16부(이영구 부장판사)는 충남방적이 한국증권선물거래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충남방적에 대한 상장폐지결정을 무효로 한다”며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고 17일 밝혔다.
이영구 부장판사는 “유가증권상장규정에는 전액 자본잠식, 감사의견 부적정 등 부실의 구체적인 사유가 있으면 상장을 폐지할 수 있는 규정이 따로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상장폐지사유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장을 폐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회사에 갱생의 기회를 주는 제도인데 회사정리절차를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상장이 폐지되도록 하는 것은 권리를 지나치게 제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가증권 상장규정에 따르면 통합도산법(구 회사정리법)에 따라 회생절차를 법원에 신청하는 기업은 자동적으로 상장을 폐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즉시퇴출제는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회생을 더 어렵게 만드는 가혹한 조치라는 입장과 투자자보호를 위해서 필요하다는 증권선물거래소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법원에서는 법정관리 기업들이 신청한 상장폐지 중지 가처분을 본안소송 전까지 받아들여주는 추세였으나 본안 소송에서는 즉시퇴출제의 손을 들어준 경우가 더 많았다.
현재까지 즉시퇴출제와 관련한 본안소송은 총 4건이 진행됐으며 그 중 1심에서는 국제상사가 지난해 말 승소한바 있다. 그러나 나머지 삼보컴퓨터, 동해펄프, 충남방적은 1심에서 패소했다. 4건은 모두 항소돼 서울고등법원에 계류중이며 이중 충남방적 사건에 대해 가장 먼저 판결이 내려졌다.
이번 판결에 대해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측은 “법정관리기업 주가에 대해 작전세력이 개입해 불특정 투자자들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즉시퇴출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며 “이번 고등법원 판결에 대해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상고할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