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 빼고는 다 오른 것 같은데 물가가 떨어졌다구요? 저 같은 미혼 직장인은 대부분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장바구니물가를 몰라서 그런가요?" (5년차 직장인 임영광(32)씨)
"딸이 이제 막 돌을 지나서 이유식 비중을 높이고 있는데 장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장바구니 물가도 일부 과일을 빼놓고는 여전히 높아요." (결혼 3년차 주부 이성영(36)씨)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는데 피부로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가격 변동에 따른 물품 간 소비량 변동을 반영하지 못해 물가상승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국내 현실에서는 오히려 지표가 체감물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유가 뭘까.
◇소비 줄이기 힘든 품목 가격만 올라=11월 소비자물가(CPI)는 1년 전에 비해 1.0% 올랐다. 지난 2월 이후 9개월 만에 최저치다. CPI보다 광범위한 지표로 종합물가지수로 불리는 GDP 디플레이터는 2분기 연속 제로를 찍었다. 지표상의 저물가와 달리 지출목적별로 뜯어보면 품목별로 차이가 크다. 식료품·음료 항목 전체로는 지난해 11월보다 1.7% 올랐다. 항목 내 비중이 가장 큰 육류가 9.7% 급등했고 어류 및 수산(3.2%), 우유·치즈 및 계란류(2.0%) 등 식탁물가에 직결되는 품목들의 상승 폭이 컸다. 반면 과일 가격이 11.1% 내렸고 채소 및 해조류도 4.0% 감소했다. 과일 소비는 줄일 수 있어도 반찬을 줄이기는 힘들다. 또 채소보다 육류의 가격 민감도가 더 크다.
이밖에 주택·수도·전기 및 연료 가격 상승률이 2.2%, 의류 및 신발이 2.2%로 높은 반면 통신(0.0%)과 오락 및 문화(-0.5%), 주류 및 담배(-0.2%) 등 생활필수품이 아닌 품목은 오히려 가격이 내리거나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주거비용 상승분을 제때에 반영하지 못한 점도 체감·지표 간의 간극을 벌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미 많이 오른 물가…기저효과도 영향=이명박 정부 5년간 소비자물가지수는 연평균 3.5%씩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 이후 한국은행은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5.25%에서 2.00%까지 낮추며 돈 풀기에 나섰고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과 내수 진작책을 펴면서 물가 상승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올해 들어 국제유가 약세에 따른 제품 공급가격 하락과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침체로 물가 상승률이 하락 반전했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물가 눈높이는 과거 고물가 시대에 멈춰 있다. 이는 물가가 하락하는 국면일수록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을 조정하는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박세령 한국은행 물가분석팀장은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기타 선진국에 비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특정 시점마다 변경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난다"며 "이러한 심리 상황은 실제 물가와 체감물가의 간극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이어 "정보경직성 이론에 따르면 물가가 낮을수록 관련 정보를 찾을 유인이 적어지게 마련이어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변경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래 불확실성도 체감물가 높여=심리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2017년부터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등 사회 전체적으로 활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점도 체감물가를 높이고 있다. 또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생활을 팍팍하게 하면서 물가 민감도를 키운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2년 현대경제연구원이 전국 성인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물가가 불안하다고 응답한 소비자는 93.1%에 달했다. 또 당시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의 체감물가상승률 평균은 5.0%였다. 그러나 그해 CPI 증가율은 2.2%에 불과했다. 이듬해에는 1.3%로 더 떨어졌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전업주부보다 자영업자가,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의 체감물가가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최근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은퇴 인구가 늘어나면서 물가를 높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