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경제는 당초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높은 성장을 보이고 있다. 금년 상반기중 7.3% 성장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9% 이상의 높은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이렇게 성장률이 높아진 것은 소비와 설비투자가 급속히 회복되고 수출도 엔고 등의 영향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사태, 고유가 등의 불확실요인이 있기는 하지만, 엔 강세로 내년에도 경기회복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대부분 내년 우리 경제는 5∼6% 성장하고, 소비자물가는 3% 수준으로 상승하며, 경상수지 흑자가 100억 달러 내외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와 비교하면 성장, 물가, 국제수지 성적이 모두 좋지 않지만 내년이 경기회복의 2차 연도임을 감안할 때 나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새해 경제가 경제연구기관들이 예측한 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올해 초 정부가 금년 경제성장률을 플러스 2%로 전망하였을 때만 하더라도 쉽게 이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예측기관들은 올해 경제성장이 잘해야 마이너스 성장을 면할 정도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9%에 이른다니 급변하는 경제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려움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점증하는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내년 경제도 예상을 크게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외 여건이 매우 불확실하다. 내년중 5%대 성장은 해외여건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변화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식시장의 활황세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국 경제가 연착륙하면서 엔화가 달러당 105∼115엔 사이로 변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미국 경제가 움직이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의 서머스 신임 재무장관이 전임 장관의 강한 달러 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겠다고 발표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달러가 약세로 반전한 것만 보아도 정부의 정책보다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이 더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
유가도 불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은 석유생산국들의 감산합의가 지켜지지 않아서 유가가 다시 안정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현재 석유시장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구조변화를 보이고 있어서 유가가 과거와 같은 변화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속단하기 어렵다.
대내 여건도 낙관할 수 없다. 대우사태는 부실규모면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우며 기업개선과정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개선 대상인 대우 12개사의 자본잠식 규모는 이미 30조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11월 4일 금융시장안정 종합대책의 발표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으나 사태가 완전히 진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내년 2월 대우 채권의 95%까지 환매가 시작되면서 금융시장이 새로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으므로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마침 내년 2월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정치적 요인에 의하여 불안이 가중되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하여야 한다. 6·25 동란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97년의 외환위기는 대선을 몇 주 앞두고 발생하였다.
오비이락이라고 넘겨 버리기에는 고통이 너무나 컸었다. 정치적 일정 때문에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겸허하게 반성하고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내년 경제에는 이렇게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서고 엔화의 강세로 이어질 때 반도체, 통신기기, 자동차 등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내년 경제성장이 7%대에 이를 수도 있다.
수출이 확대되면서 고성장세가 이어질 때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 바로 물가불안이다. 한국은행은 내년중 우리 경제가 잠재생산수준을 회복하면서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수입이 크게 늘고 경상수지까지 불안해진다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우려가 있다.
내년에는 올해와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 경기회복세를 이어가야 하겠지만 지나친 경기확대를 지양하고 구조조정을 통하여 내실을 다져 나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