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

金文煥(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슈뢰더씨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와 마찬가지로서,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5년전, 사회정의를 말하는 자는 패배자처럼 보였으나, 이제 사람들은 중도좌파의 정치를 바라고 있다.」 이는 블레어영국수상이 지난 9월 29일, 노동당의 연차대회에서 소리높여 선언한 내용이다. 영·불에 이어 독일에서도 중도좌파정당이 탄생한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승리로, 구주연합에 가맹한 15개 국가중, 중도좌파 또는 좌파가 정권을 쥔 나라가 13개국으로 늘어났다. 각 지도자의 실적도 눈에 뜨인다. 불레어가 북아일랜드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풀고 지방분권을 추진했다면, 이탈리아의 프로디수상은 연금개혁과 증세를 단행하고,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구주통화통합의 제1진에 들어섰다. 모두 오랜 현안였던 까닭에 당파를 초월한 찬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탈리아신문이 「중도좌파의 새로운 국제연대 움직인」이라고 보도한 뉴욕대학 포럼(9월 21일자)에서 블레어는 자유경쟁 지상주의도, 전통적인 사회주의노선도 아닌 새시대의 사민주의 이념으로 「제3의 길」을 내세웠다. 「구주사민선언」이라고 해도 좋을 이 이념을 통해 블레어는 「구주의 진보정당이 공유할 만한 가치관」을 강조한다. 유럽에서 사민세력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헤랄드 트리뷴지가 지적한대로「같은 악보를 보면서 다른 음정으로 노래하고 있는」나라들을 하나의 이념으로 아묶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더군다나 현재의 유럽 사민정권의 대다수가 아직 발족한지 2, 3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진로를 확언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 이는 21세기를 향한 지구 전체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독일에서 7년간 공부한 경험에서 독일 통일은 단순한 자본주의의 승리라기보다는 어떤 점에서 양질의 사회주의가 저질의 사회주의를 흡수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필자로서는 구주연합의 향방에서 우리 자신의 미래를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것이 결코 무의미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다만 북한을 떠올리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도 숨김없는 사실이다. 북한당국이 말하는 「우리식 사회주의」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3의 길」의 접점을 찾기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기야 우리 현실에 대해서도 과연 그것이 이념적으로 정리될 수 있겠는지를 의심할 사람도 없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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